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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아니 인간이 뿔났다

중앙일보 2014.11.30 00:05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기이한 뿔이 돋은 남자가 있다.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에 시달리는 이그(대니얼 래드클리프)다. 뿔에는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을 읽는 힘이 있고, 이그는 이를 이용해 애인을 죽인 진범을 직접 찾아 나선다. ‘혼스’(원제 Horns, 11월 27일 개봉,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는 이처럼 다소 황당한 소재에 판타지, 스릴러, 호러, 멜로까지 온갖 장르를 버무린 독특한 영화다. ‘엑스텐션’(2003)을 통해 호러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던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니,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 운동에 불과했던 것 같다.


[매거진M]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잔혹 판타지 ‘혼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초기작은 누군가는 평생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영화들이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엔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살육의 축제라는 표현으로 수렴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엑스텐션’은 그중 가장 요란한 영화다. 프랑스 원제는 ‘Haute Tension’, 높은 긴장감이라는 뜻이다. 미치광이 살인마로부터 친구를 구하려는 여자 메리(세실 드 프랑스)의 끔찍한 고군분투를 다뤘다. 피범벅인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을 애써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영화로, 국내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외화 1호’다. 전기톱으로 사람을 난자한다거나 시체의 머리를 이용해 자위 행위를 하는 몇몇 장면이 문제였는데, 결국 이를 삭제하고 개봉했다. 어쨌거나 전 세계 호러영화계는 범상치 않은 신예의 등장에 환호했고, 알렉상드르 아야는 2000년대 중반부터 ‘스플랫 팩(Splat Pack)’의 일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10인의 감독을 지칭하는 말이다. ‘쏘우’ 시리즈(2004~2010)로 유명한 제임스 완, ‘디센트’(2005) 닐 마샬 등이 이에 속한다.



‘힐즈 아이즈’(2006)는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이 ‘엑스텐션’의 성공 이후 폭스 서치라이트의 부름을 받아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영화다. 당연히 R등급이었고, 1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4100만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린 나름의 성공작이었다. 이 영화는 1977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만든 동명 영화(한국에는 ‘공포의 휴가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의 리메이크였다. 은퇴한 경찰관 가족이 캠핑을 떠났다가 고립된 장소에서 만난 낯선 존재들에게 떼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은 원작의 핵심을 살려 흡사 도살장을 연상케 하는 호러 장면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힐즈 아이즈’의 성공은 여름철 극장가를 겨냥한 ‘피라냐’(2010)로 이어졌다. 200만 년 만에 깨어난 식인 물고기들이 휴가철 호숫가를 피로 물들이는 내용으로, 제작비와 규모로 볼 때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나마 블록버스터에 속하는 영화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재능을 의심케 하는 사소한 문제라면 ‘피라냐’ 역시 리메이크였다는 점이다. 그가 한국영화 ‘거울 속으로’(2003, 김성호 감독)를 모티브 삼은 ‘미러’(2008)를 선보이자 혐의(?)는 더욱 짙어졌다. 그럴 만했다. 시나리오를 쓴 ‘매니악:슬픈 살인의 기록’(2012, 프랑스 칼포운 감독)은 1980년대에 나온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였고, ‘엑스텐션’마저 딘 쿤츠의 소설 『사이코(Insanity)』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알렉상드르 아야는 단지 리메이크에만 재능 있는 감독인 걸까. 그건 아니다. 그는 1970~8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경향인 슬래셔 호러의 감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21세기 감독 중 한 명으로 언급돼야 더 알맞을 것이다. 알렉상드르 아야에게 유독 당시의 인기 호러영화의 리메이크 제안이 몰렸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금세 이해되는 부분이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입장 역시 꽤 명확한 편이다. 그가 인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리메이크는 오직 ‘힐즈 아이즈’ 한 편뿐이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내게 자신의 작품 중 ‘왼편 마지막 집’(1972)을 리메이크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가 ‘힐즈 아이즈’를 리메이크에 더욱 적합한 작품으로 판단한 건,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버전을 내놓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왼편 마지막 집’은 더 좋아질 게 없을 만큼 완벽한 영화다. ‘피라냐’와 ‘미러’ 같은 작품은 모티브와 배경만 가져왔을 뿐 캐릭터와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진정한 리메이크와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부분을 향상시켜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원작이 있는 작품을 다시 영화로 만드는 것을 전적으로 반대하진 않는다.”





감독의 전환점이 된 ‘혼스’



이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혼스’는 큰 전환점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 이르러 알렉상드르 아야는 호러와 판타지의 접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슬래셔를 기반으로 한 호러를 만들면서 스스로 장르 고유의 트릭에 갇히게 됐다고 판단했던 터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기도 한 소설가 조 힐(본명은 조셉 힐스트롬 킹)의 동명 소설을 읽고 단숨에 매료된 그는 제작자를 찾아가 이 영화의 연출을 맡겠노라며 나섰다. “인간의 본성을 신랄하게 풀어내는 풍자와 복합적인 상징성에 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감독이 마음을 빼앗겼다는 그 상징, 그러니까 주인공 이그의 뿔이 의미하는 것은 ‘악마’다. 기이한 힘을 쓰고 사람에게 잔인하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악마 말이다. 이는 상징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것도 모자라 그녀를 죽였다는 누명까지 썼던 이그는 진짜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순간, 끝내 억누르고 감췄던 얼굴을 드러낸다. 극 중 그의 말마따나 “지상으로 추락한 천사처럼, 악마로 변해버린”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성을 지킨다는 것이 가능한가. ‘혼스’는 이를 묻는 영화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
감독은 이 영화를 “고딕 호러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음산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 성적 잠재 의식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얘기다. 마침 원작 소설은 복잡하게 얽힌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도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기묘하게 줄을 타는 텍스트였다. 그래서 ‘혼스’는 테렌스 피셔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나 ‘늑대인간의 저주’(1961)같은 과거 고딕 호러영화의 21세기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고약한 슬래셔 취향이 불쑥불쑥 감초처럼 튀어나온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1992)를 언급했는데, 과연 ‘혼스’는 어떤 부분에서는 이보다 훨씬 잔인하고 웃기기까지 하는 영화다. 소설에서 문자로만 묘사됐던 사랑, 증오, 복수 같은 인물들의 활활 타는 감정들이 알렉상드르 아야의 연출을 입고 화면에서 튀어나올 듯 생생한 생명력을 얻었다. 잔혹한 상황 묘사보다 인물의 감정이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점에서 ‘혼스’는 그의 연출작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감독의 개성이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문법을 좀 더 매끈하게 수용한 좋은 예인 것이다. 물론, 감독 자신의 색은 확고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혼스’ 이후 가장 빨리 만나게 될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일까. 이번엔 우주가 배경이다. 테라사와 부이치가 1977년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연재한 만화 ‘우주 해적 코브라’의 실사판 연출을 맡았다. 그는 지금 왼팔에 ‘사이코 건’을 장착한 우주 해적의 활약을 그리기 위해 각본 작업에 한창이다. 좀 뜬금없는 프로젝트 같다고? 그렇지 않다. 원작 만화는 슬래셔 영화 못지않은 세계관을 자랑한다. 역시나 잔인하고 야하다.





글= 이은선 매거진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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