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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난스러운 남자들 어쩌면 좋을까요

중앙일보 2014.11.30 00:05
매사에 과민한 현대인의 증상 중에 결벽증 만큼 카메라의 구미를 당기는 것도 드물다.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벅벅 씻고, 모든 물건을 줄 맞춰 세워놓는 행동은 그 자체로 볼거리이자, 캐릭터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다. 올 초 프랑스 개봉 당시 크게 흥행한 코미디영화 ‘슈퍼처방전’(원제 Supercondriaque, 12월 10일 개봉, 대니 분 감독)도 그렇다. 지독한 결벽증 때문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주인공 로망(대니 분)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변해가는 모습이 큰 웃음을 준다. 여기, 그와 견줄 만한 코미디 영화 속 결벽남들을 한데 모았다. 참 가지가지 하는 남자들이다.


[매거진M] ‘슈퍼처방전’으로 본 코미디 속 결벽남







슈퍼처방전

이름 로망 포베르(대니 분)

직업 인터넷 의학 사전 사진가

결벽증 레벨 ★★★★




증상

겉보기엔 멀쩡하다. 훈훈한 외모와 말솜씨에 경제적 능력까지 갖췄다. 다만 병이 좀 있다. 결벽증에 건강염려증, 신경쇠약증이 꽤 심각하다. 자연히 단골 식당 드나들듯 병원에 다니는데, 거기서도 간호사들을 감시하느라 마음이 편치 않다. “만지지 마! 병원 내 감염은 싫단 말이야! 맨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이 남자, 로망 포베르는 사람들이 서로 키스를 나누는 게 싫어 연말 파티에서 도망치다가 미친 놈 소리를 듣는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는 더러운(?) 손잡이를 차마 잡지 못해 곡예를 부린다. 여자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다. 먼지가 가득할까 무서워서다. 여기까진 그래도 양반이다. 섹스할 때조차 상대방이 샤워를 안 했을까 염려해 욕실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사랑을 나눈다. 이 정도면 정말 ‘미친 놈’이다.



처방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것!

로망은 동유럽에서 건너온 난민들의 캠프에 봉사 활동을 갔다가 어느 혁명 영웅과 신분증이 바뀌고 만다. 하지만 그를 진짜 영웅으로 믿는 봉사자 안나(엘리스 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웅 행세를 하게 된다. 멋있고 터프한 남자처럼 행동하다 갖은 고난을 겪지만, 이는 로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그는 마침내 사랑도 얻는다.





플랜맨(1월 9일 개봉, 성시흡 감독)

이름 한정석(정재영)

직업 도서관 사서

결벽증 레벨 ★★★☆




증상

1분 1초 계획을 세워 사는 그야말로 ‘플랜’맨. 일정을 알리는 알람으로 시작해 알람으로 끝나는 하루를 보낸다. 욕실은 헤어 드라이어로 물기를 제거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시계와 손 청결제는 늘 지참하는 필수 소품이다. 뭐든 일렬로 줄 맞춰 놓는 것을 사랑한다.



처방 지저분하고 천방지축인 여자와 함께 노래를 불러라.

정석은 자신 못지않게 청결한 편의점 직원 지원(차예련)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의 후배 소정(한지민)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이 제멋대로인 여자 소정과 얼떨결에 밴드를 만들어 오디션까지 나가고, 점차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제임스 L 브룩스 감독)

이름 멜빈 유달(잭 니콜슨)

직업 로맨스 소설 작가

결벽증 레벨 ★★★★☆






증상

명실공히 결벽남계의 대부. 길을 갈 땐 보도블록의 틈새를 밟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느라 곡예하듯 걷는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이상한 품새로 소리까지 질러가며 걷기도 한다. 식당에 갈 때 개인 나이프와 포크를 지참하는 건 필수. 손을 씻을 때도 아주 뜨거운 물로만 씻는다. 비누를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것 또한 오랜 습관. 강아지를 만질 땐 반드시 장갑을 낀다.



처방 반려 동물을 키워보기.

이런 멜빈은 평소 못마땅해 하던 이웃의 강아지를 돌봐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지독히 싫기만 했던 이 강아지로 인해 그는 제 안의 따뜻함을 찾고, 진짜 사랑에도 빠진다.





롤러코스터(2013, 하정우 감독)

이름 마준규(정경호)

직업 욕설로 뜬 한류스타

결벽증 레벨 ★★☆






증상

비행기에 앉아 좌석은 물론 창틀까지 깨끗하게 닦아야 안심이 된다. 소지품을 깨끗하게 소지할 수 있는 지퍼백을 늘 가방 안에 들고 다닌다. 비행공포증과 편집증은 덤.



처방 미친 듯이 흔들리는 비행기에 한 번 타 봐야.

일본 활동 중 여자 아이돌과 스캔들이 터져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준규. 그런데 비행기가 두 번이나 착륙에 실패하며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며 조금씩 변하는 듯하지만 글쎄, 사람이 쉽게 바뀔까.





매치스틱 맨(2003, 리들리 스콧 감독)

이름 로이(니콜라스 케이지)

직업 특급 사기꾼

결벽증 레벨 ★★★






증상

대인기피증, 광장공포증을 함께 앓고 있다. 본업인 사기 치는 일보다 더 잘하는 건 청소. 바닥의 먼지 한 톨 참지 못한다. 테이블을 닦을 때는 다리까지 꼼꼼히 닦는다. 집안은 늘 약 냄새가 진동한다. 한쪽 벽면이 각종 소독약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처방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

어느 날 열네 살 소녀 안젤라(알리슨 로먼)가 로이 앞에 딸이라고 나타난다. 알고 보니 임신한 채 이혼했던 전처가 로이 몰래 딸을 낳아 키운 거다. 이 소녀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로이의 삶을 흔들어놓는다. 그 결말은 두고 봐야 하지만.





스릴러에도 종종 등장하는 결벽남



결벽남이 코미디영화에서만 활약하는 건 아니다. 청결과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증상은 스릴러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다. ‘적과의 동침’(1991, 조셉 루벤 감독)은 결벽증의 특징을 제대로 녹여낸 스릴러다. 로라(줄리아 로버츠)는 부유한 마틴(패트릭 베긴)과 여유 있는 삶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마틴은 결벽증에 의처증까지 앓고 있다.
로라는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익사당한 척 연기해 그 손아귀를 벗어나지만, 마틴은 이내 로라의 거처를 알아낸다. 로라가 집에 들어섰을 때 각종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 마틴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 주인공의 결벽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효과적으로 기능한 좋은 예다. 결벽증에 각종 정신 이상이 합쳐져 더 끔찍한 일을 벌이는 주인공들도 있다.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후 그녀의 이를 다 뽑아버리는 잔인한 일을 벌이는 ‘덴티스트’(1996,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치과 의사 앨런(코빈 번슨). 결벽증에 신경쇠약까지 골고루 갖춘 싸이코패스다. ‘얼론’(2001, 필립 클레이든 감독) 역시 결벽과 각종 신경증을 앓고 있는 연쇄살인범 알렉스(존 슈라넬)가 주인공이다. 최근에는 한국영화 ‘숨바꼭질’(2013, 허정 감독)의 주인공 성수(손현주)도 빼놓을 수 없다.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씻고, 냉장고의 모든 음식을 반듯이 정리해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죄책감 때문에 그럴 뿐, 그는 외려 피해자로 등장한다.





여기 결벽녀 추가요!

뉴욕 미니트(2004, 데니 고돈 감독)



결벽남에 비해 결벽녀 주인공은 적은 편이다. 통념상 ‘깔끔 떠는 여자’보다 ‘깔끔 떠는 남자’가 더 재미있고 극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 귀여운 결벽녀는 그래서 더 반갑다. 성격이 정반대인 쌍둥이 자매 제인(애슐리 올슨)과 록시(메리 케이트 올슨)가 티격태격 대는 이 코미디에서 엄청난 정리벽을 자랑하는 결벽녀를 연기한 건 애슐리 올슨.





나 빼놓으면 서운해

에비에이터(2004,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연기한 주인공 하워드 휴즈는 실존 인물이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이자 항공 재벌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전기영화이니, 코미디는 아니지만 이 항공 재벌 역시 지독하게 까다로운 결벽남이다. 어깨에 먼지가 내려앉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부딪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취미 삼아 직접 비행기를 조종할 때도 조종간을 비닐로 꼼꼼히 덮어씌우는 세밀함을 발휘한다.





글= 임주리 매거진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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