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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자동차·석유화학 반색 … 정유 “실낱 희망 사라져”

중앙일보 2014.11.29 00:30 종합 4면 지면보기
압달라 엘 바드리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이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각료회의 직후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기존의 산유량(하루 평균 3000만 배럴)을 유지하며 회원국이 산유량 한도(쿼터)를 엄격히 지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71.25달러까지 떨어졌다. [빈 AP=뉴시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7일(현지시간) 열린 각료회의에서 하루 평균 3000만 배럴인 기존의 산유량 한도(쿼터)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낮은 수준의 유가를 유지해 미국의 셰일오일을 고사시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다.

유류비 부담 큰 항공 최대 수혜
나프타 가격 떨어져 원가 경쟁력
정유업계는 정제 마진 바닥 수준



 감산 합의 실패로 국제 유가는 급락했다. 이날 런던석유거래소(ICE)의 브렌트유 내년 1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71.25달러까지 떨어졌다. 유가는 6월 이후 40%가량 하락했다. 국제유가 하락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가 하락은 국내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당장 운전자들이 사용하는 휘발유·경유 가격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 L당 1887.37원(오피넷 전국 주유소 평균 기준)으로 시작한 휘발유 가격은 28일 1712.82원으로 9.3% 떨어졌다. 올해 초 1705.85원이었던 경유 가격도 28일 1517.52원을 기록, 11% 하락했다. 한국석유공사는 다음주에는 L당 가격이 휘발유는 1706원, 경유는 1512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석유협회의 박진호 팀장은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나면 약 2~3주 뒤 국내 원유가에 반영되는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주유소 기름값 역시 꾸준히 하락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원유시장조사업체 오일프라이스 인포메이션 서비스의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감산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유가는 배럴당 35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OPEC는 내년 6월 회의에서 감산 여부를 다시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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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계에서는 업종별로 희비가 교차한다. 가장 반색하는 쪽은 항공업계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두바이유 가격이 L당 10달러 하락하면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이 1605억원, 아시아나는 813억원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전체 비용의 30%가 유류비여서 유가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저비용항공사(LCC)도 홀가분하게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진에어 측은 “유가가 10% 내릴 때마다 당기순이익이 100억원씩 늘어난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도 기대가 크다. 기름 소비가 많은 미국에서 차 판매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유가 하락은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차 확산을 늦추는 효과가 생겨 현대·기아차가 친환경차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원유로 만드는 나프타의 가격이 급락하면서 원가 경쟁력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제 나프타 가격(일본 도착 가격인 MOPJ 기준)은 9월 평균 1t당 871달러 선을 유지하다가 14일 기준으로 639달러까지 내려갔다. 효성 관계자는 “섬유와 산업자재 등의 가격 하락에 비해 원재료인 나일론·폴리에스테르 등의 가격 하락 폭이 더 크다”며 “중장기적으로도 지속적인 수익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울상이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등유·경유 등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정제마진’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데 마진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1분기 기준 배럴당 10.7달러였던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은 올해 4분기 2.2달러로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저유가를 대비한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며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것 외에 대안도 딱히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도 “(감산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가졌는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OPEC의 결정으로 원유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려는 각 나라의 파워게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자국의 셰일오일 개발업체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제제재 중인 러시아, 핵 문제로 갈등을 빚는 이란, 그리고 이슬람국가(IS)의 석유 판로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특히 러시아는 직격탄을 맞았다. 27일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달러당 49.227루블)으로 떨어졌다. 루블화 가치는 7월 이후 30% 하락했다. 반면 유럽과 중국 등 에너지 수입국 입장에서 저유가는 기회다. 중국은 저유가를 활용해 석유 대량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이현택·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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