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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진천 할머니 8명, 도레미 식당 창업기

중앙일보 2014.11.29 00:06 종합 22면 지면보기
충북 진천군에 문을 연 시니어 창업식당인 ‘도레미 식당’의 할머니들이 27일 주방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요놈 ‘正’ 자가 벌써 10개란 말여?” “내 월급맨치는 벌었구먼~.”

수제비 시켰는데 칼국수 줘
실수 연발, 1.5인분씩 듬뿍
“자식 새끼처럼 잘 키워볼겨”



 지난 25일 오후 충북 진천군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한 식당. 검은색 노트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바를 정(正)’ 자를 연신 들여다본 김정실(70) 할머니가 껄껄 웃었다. 계산대 옆에 놓인 일종의 매출장부였다. 그 옆에선 마수남(63) 할머니가 다음날 쓸 밀가루 반죽을 치댔다. “물컵을 분명 여따 놨는데 금세 어디 간겨.” 뒤뚱대며 빗자루를 든 윤금예(71)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말했다. “육수가 너무 짜잖여. 손님 다 떨어지것네~.” 김순영(77) 할머니는 큰 냄비에 담긴 국물을 맛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루면 직원들이 허둥지둥대며 긴장하는 집, 얘기만 잘하면 콩나물밥 한 그릇을 2인분까지 맛볼 수 있는 밥집이 있다. 70대 할머니들이 공동 사장이자 직원으로 일하는 시니어 창업식당 ‘도레미 식당’ 1호점 얘기다.



 지난 17일 문을 연 도레미 식당은 63~77세 할머니 8명이 창업했다. 진천군에서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을 위탁받은 진천시니어클럽이 초기 창업자금 2000여만원을 댔다. 이 돈으로 가게를 빌리고 리모델링도 했다. 개점 후 발생하는 월세와 전기세, 음식 재료비는 이제 할머니들이 직접 벌어야 한다. 한 명당 월급은 20만원. 대신 수익금이 발생하면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힘이 부치는 할머니들의 체력을 고려해 3일씩 4명이 번갈아 가며 일하기로 했고 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최준순(53·여)씨가 보조를 맡았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메뉴는 일단 할머니들이 집에서 자주 해 먹던 콩나물비빔밥과 칼국수·수제비 등 3가지로 정했다. 가격은 모두 4000원으로 다른 식당보다 2000원 정도 저렴하다. 식당 이름은 주재료인 콩나물의 모양새가 노래 음표처럼 생겼다고 해서 할머니들 스스로 도레미로 지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할머니들은 보라색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직접 육수를 끓이고 겉절이 배추김치와 동치미·총각무 등이 담긴 반찬통도 가지런히 놨다. 식탁도 광이 날 만큼 말끔히 닦았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긴장한 빛이 역력한 김순영 할머니가 쑥스럽게 말했다. “뭐 드실랴.”



 장사가 서툰 할머니들은 실수를 연발했다. 테이블 8개가 손님들로 가득 차자 “엄니, 저는 수제비가 아니고 칼국수예요” “아줌니, 왜 물을 자꾸 주셔. 아까 줬잖아유”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 손님은 칼국수를 주문했다가 수제비가 나오자 “괜찮다”며 웃기도 했다.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온 이성호(30)씨는 “할머니께서 직접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하셔서 주문하는 것조차 죄송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맛은 최고”라고 말했다.



 초보 창업자인 할머니들 대부분은 평생 농사일만 했다. 고령인 탓에 특별한 직업 없이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거나 TV를 보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 9월 시니어클럽에서 식당 창업을 지원한다는 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 참여하게 됐다. 개업 전 육수 끓이기와 칼국수 면 만들기 등 직무교육도 받았다.



 자식들에게 줄 음식을 장만하던 습관 때문인지 이곳 음식은 항상 양이 넘친다. 손님들 대부분 “1.5인분 이상은 먹고 간다”며 흐뭇해한다. 보조를 맡은 최준순씨는 “하루 평균 40그릇을 파는데 반죽은 늘 60인분을 준비한다”고 했다. 김순영 할머니는 “오시는 손님들이 다 내 자식 같고 손주 같아서 나도 모르게 음식을 더 내주게 된다” 고 귀띔했다.



 폐점 때가 되자 한 손님이 직접 농사를 지은 거라며 땅콩과 호박을 들고 와 할머니들에게 건넸다. 이웃 마을에 사는 박재원(67)씨였다.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어머니가 해 준 콩나물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점심 때 같이 왔는데,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 그릇 가득 주시고 수제비도 덤으로 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농산물이라도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업주들처럼 할머니들도 대박을 꿈꾸고 있다. 매일 번 돈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윤금예 할머니는 “30일이 월 매출 정산하는 날이여. 기대가 많이 돼야. 돈 많이 벌어 예쁜 옷도 사 입고 손주들 용돈도 줄겨”라고 말했다. 마수남 할머니도 “처음엔 쑥스럽기도 했는디 이젠 욕심이 생겨. 도레미 식당을 내 자식 새끼처럼 한번 잘 키워볼겨”라고 했다.



진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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