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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원폭에서 살아남은 녹나무 … 9·11 테러 견뎌낸 돌배나무

중앙일보 2014.11.29 00:05 종합 24면 지면보기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오른쪽)이 탄자니아의 곰비에서 와하 부족의 전통 치유자와 함께 약용 식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사이언스북스]


희망의 씨앗

제인 구달·게일 허드슨 지음

홍승효·장현주 옮김

사이언스북스

576쪽, 1만9500원




25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는 재학생·시민 3000여 명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젊은 여성의 몸으로 1960년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비 숲으로 들어가 침팬지 무리를 연구했고,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처음 보고한 세계적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80) 박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원장 최재천)에서는 최근 생태원 내 작은 숲길에 ‘제인 구달의 길’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구달 박사가 이번에는 식물에 관한 책을 썼다. 그동안 썼던 『희망의 밥상』 『희망의 자연』과 시리즈처럼 이어지는 책이다. 어린 시절 영국 본머스 집 주변과 곰비 숲에서 겪은 체험과 식물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결합돼 있다. 동물학자로서 식물에 관한 책을 쓴다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구달 박사는 책 1장에서 어린 시절 접했던 58종의 식물을 나열하면서 식물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제목처럼 씨앗에 대한 이야기다. 다양한 씨앗의 모습은 물론 대추야자 씨앗이 200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어 싹을 틔운 놀라운 사례도 소개한다. 고대 로마제국과 맞서 싸우다 유대인들이 전멸했던 마사다 요새에서 발견된 것이다. 구달 박사는 또 가뭄에 시달리거나 초식곤충의 공격을 받은 식물이 화학물질을 내보내 서로 의사소통하고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식물과 관련된 지식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양귀비·대마초처럼 마약으로 쓰이는 식물은 물론 벼·면화 등 농업작물의 역사도 들어있다. 구달 박사는 산업용으로 재배하는 삼과 마리화나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삼의 명예회복에 나섰다. 향정신성 성분인 THC가 마리화나에는 2~60%가 들어있으나 삼에는 0.3~1%만 들어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전자변형(GM) 농산물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개인적으로 GM 식품이 사람의 건강에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기 어렵다”며 “GM 식품으로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며 실험하는 과학자들이 같은 식품을 그들의 자식에게 제공하면서 행복감을 느낄지 의문이 든다”고 적었다.



 생물유전자원의 약탈, 삼림파괴 등의 주제까지 다루는 이 책은 “우리는 (후손들에게서) 지구를 빌린 것이 아니라, 훔쳤다. 아직도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멸종 위기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하와이의 코키아 쿠케이 나무, 원자폭탄에서 살아남은 일본 나가사키의 녹나무,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의 잔해에서 살아남은 돌배나무를 통해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지는 지구를 되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한편 이 책은 지난해 봄 영어판 첫 출간 당시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을 표기 없이 옮겨 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국내에 번역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한 개정판이다. 그 때문인지 책에 소개된 내용의 출처를 50여 쪽에 걸친 주석으로 일일이 밝혔 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nvirep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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