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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성욕이 상징화되지 않은 남자

중앙일보 2014.11.29 00:04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사적인 자리에서 한 여성이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아는 한 남자는 세상 모든 여자를 자기 거라고 생각한다는데 그럴 수도 있는가?” 믿을 수 없어 나도 되물었다. 정말 그런 언어를 사용했는지. 그녀는 사실이라고 확인시켜 주면서 그가 결혼한 중년 남자라고 부연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진화하면서 발전시켜 온 두 가지 탁월한 기능으로 성욕과 공격성을 꼽는다. 그것은 인간 생명체의 절대적 소명, 종족이 끊이지 않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한 필수 기능이다. 수컷 인간은 되도록 많은 곳에 정자를 뿌려 자손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고자 한다. 암컷 인간은 제한된 수의 난자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출산과 양육에 적합한 상대를 까다롭게 고른다. 그리하여 21세기에도 남녀는 소개팅 후 반응이 다르다. 남자는 친구가 여자를 만났다고 하면 단 하나만 묻는다. “예뻐?” 여자는 소개팅을 했다는 친구에게 묻는 것이 많다. “나이는? 키는? 부모님은? 연봉은? 성격은?” 저 말들은 가끔 정자와 난자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인간은 성적 욕망을 날것 그대로 행동화하지 않는다. 성장하면서 본능을 상징화하고, 욕망을 현실에 적합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상징화된 성욕은 권력욕이나 명예욕으로 대치되고, 현실 점검을 거친 성욕은 승화된 형태로 표현된다. 학문, 예술, 운동에 대한 몰두 같은 것.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에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제안한다. 원본능, 자아, 초자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욕망 덩어리인 원본능의 고삐를 잘 제어할 수 있고 초자아의 통제나 금지에 죄의식을 느끼며 반발하지 않는다. 자아는 원본능과 초자아를 조절하며, 양쪽 정신 영역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여 더욱 강화된다.



 남자가 원본능 영역에서 세상 여자가 모두 자기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판타지를 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미 사회적 자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 욕망을 행동화하여 불특정 다수 여자를 향해 사냥꾼의 태도를 보인다면 자아가 심각하게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성욕이 상징화되지 않은 남자, 성욕을 승화적으로 표출할 줄 모르는 남자가 자주 목격된다. 그런 이들은 원본능의 질주에 끌려다니면서, 초자아의 감시 목소리에 짓눌리면서 불안과 죄의식에 시달릴 것임에 틀림없다. 그 불편한 감정들을 회피하기 위해 또다시 성적 대상을 추구할 것이다. 그토록 막막한 자멸의 폐쇄회로라니.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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