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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보수 이야기] 이젠 야만적 수능을 폐지하자

중앙일보 2014.11.29 00:04 종합 33면 지면보기
복거일
소설가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문제를 일으켰다. 정답이 복수인 문제 둘이 나와서 혼란이 크다. 지난해 수능은 지리 과목의 잘못된 문제 하나로 뒤늦게 만 명이 넘는 학생의 운명을 바꿀 모양이다.



 당연히 갖가지 개선책들이 나온다. 안타깝게도 그것들의 효과는 클 수 없다. 짧은 기간에 수천 개 문제들을 내는데, 한두 개가 잘못되는 것은 잔류적 수준이다. 어떤 개선책도 오류를 더 줄이기 어렵다. 적절한 난이도를 통해 변별력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런 사정은 우리가 옳은 물음을 던지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잔류적 수준의 오류가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런 체계는 근본적 문제를 안았다는 얘기다. 수능의 치명적 약점은 모든 고등학생들과 재수생들이 참여하는 시험이어서 작은 문제도 영향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이다.



 자연엔 그렇게 비효율적인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적 체계는 한 부분에 일어난 작은 문제가 전체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위성(modularity)을 조직 원리로 삼는다. 단위(module)들이 모여 바로 위의 계층을 이루고 그 상위 계층이 모여 다시 상위 계층을 이룬다. 생명체든 사회 조직이든 같다. 우주 자체가 그런 원리로 이루어졌다. 각 단위들은 내부적으로 결속력이 크면서도 다른 단위들로부터는 상당한 독립성을 지녔다. 덕분에 조직이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하다. 만일 예전 방식대로 학생들과 대학들이 자유롭게 지원하고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 한 대학에서 나온 출제 오류는 그 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국한될 것이다. 수능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출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수능의 존재 이유로 옮아간다. 수능은 고교 졸업생들을 그들이 원하는 대학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가서 다시 시험을 치른다. 그런 예비 과정인데도 비용은 엄청나다. 관리 비용만 몇백억원이 든다.



 수험생들이 치르는 시간과 노력도 무척 크다. 실은 온 나라가 숨을 죽인다.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영어 듣기 시간엔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된다. 이제 효과는 작고 비용은 엄청난 수능을 버릴 때가 되었다.



 실은 논의가 수능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 교육체계가 본질적으로 반체제적이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시장경제를 구성 원리로 삼은 터라 우리 사회에선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시장이 미처 하지 못한 부분들을 정부가 맡는다. 덕분에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로 발전했다. 그러나 교육은 정부가 독점한다. 시민들의 참여를 사교육이라고 규정해 억누르면서 질이 낮은 교육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강요한다.



 자연히 정부 주도의 공교육이 놓치는 부분들은 시장이 보완한다. 그러나 정부는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사교육은 나쁘다고 박해한다. 같은 지식을 학교에서 교사들이 가르치면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학교 밖에서 가르치면 나쁘다는 해괴한 논리다.



 교육은 중요하지만 공공재가 아니다. 그래서 시장이 정부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공급한다. 정부가 교육을 독점하다 보니 정작 정부의 몫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은 소홀하다. 예전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야학이 개인들의 노력에 의존했다는 사실에서 이 점이 아프게 드러난다. 시민들이 자기 처지에 맞는 교육을 찾아서 향유하고,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원을 써야 한다.



 찬찬히 살피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모든 문제는 교육이 시장경제 원리를 어기고 오히려 명령경제를 따른다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령경제에선 온 사회의 활동들이 하나로 묶였으므로 한 부문의 작은 문제도 온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수능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당연히 명령경제를 운영하는 당국에선 작은 변화들도 억누른다. 그래서 혁신이나 진화가 나올 수 없다. 지금 우리 공교육에선 외부 환경에서 나온 변화를 교과목이나 학과에 반영하는 것도 무척 힘들다. 인문계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렵다는 얘기가 오래 전에 나왔어도 대학들은 변신이 더디다.



 근본적 대책은 시장경제에 맞도록 교육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리가 교육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인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다.



 먼저, 수능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 큰 비용을 들여서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는 학생들을 경쟁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학생들이 자기 희망과 능력에 맞는 대학에 직접 지원하면 된다.



 자율형사립고 문제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경제의 목표다. 학부모들이 좋다고 하는 학교 형태들을 왜 막는가? 그런 실험들에서 나온 장점들을 다른 학교들도 본받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구성 원리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지금 교육 분야에서 나온 문제들은 모두 그렇게 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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