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에서 회화로 무궁무진 앵글 속 세계

중앙선데이 2014.11.22 02:15 402호 8면 지면보기
니콜라 닉슨이 40년간 네 자매를 찍은 ‘브라운 자매들(The Brown Sisters)’이 걸려 있는 프라앤켈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 사진 파리 포토
세계 최고이자 최대 규모의 사진 전문 아트 페어로 꼽히는 파리 포토(Paris Photo 2014)가 13일부터 16일까지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렸다. 프랑스와 전세계에서 146개 갤러리가 참여한 올해 18회 행사에는 관람객이 6만 여명에 달했다. 지난해보다 5000명 가량 늘어났다. 그만큼 사진에 대한 수요와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미술시장 통계를 발표하는 아트 탁틱(Art Tactic)에 따르면 2013년도 크리스티·소더비·필립스 경매의 사진 경매 판매액은 5억700만 달러(약 6266억 원)로 2012년도에 비해 30% 증가했다.

세계 최대 사진전 ‘파리 포토 2014’를 가다

사진 시장이 커지는 것은 에디션이 여럿이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때문이기도 하고 사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높아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디션 역시 사진당 10개 내외로 한정돼 있는지라, 전세계적으로 컬렉터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인기 작가의 작품가는 천정 부지로 뛰기도 한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독일 작가 안드레아 거스키(Andrea Gursky)가 찍은 라인강의 사진으로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433만 달러(약 47억 6000만 원)를 기록했다. 그 뒤로 미국의 여류 사진 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 캐나다 출신의 제프 월(Jeff Wall)이 있다.

12일 오후 플뢰르 펠르랑 문화부 장관이 개막을 선언한 이래 장 자크 아야공 전 베르사유 궁 관장,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 제인 버킨, 토마스 루프·마틴 파·리처드 프린스 같은 세계적인 사진 작가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그 현장을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게리 파비안 밀러의 ‘In Red’(2010-2014), Light, water, Lambda c-print from dye-destruction print ⓒ Garry Fabian Miller, Courtesy HackelBury Fine Art, Exhibitor : HACKELBURY
프랑스 여배우가 기획한 미국의 감성
올해의 주빈국은 미국이었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 작가 윌리엄 이글스톤이 찍은 미국의 도시 풍경을 선보였다. 때맞춰 파리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도 12월까지 이글스톤의 전시를 열고 있다.

이목이 집중된 곳은 샌프란시스크에서 온 프라앤켈(Fraenkel) 갤러리였다. 이 부스에서는 미국 작가 니콜라 닉슨(Nicholas Nixon)의 ‘브라운 자매들’을 내놓았는데, 닉슨이 아내 베이브 브라운과 그녀의 세 자매 모습을 40년간 매년 찍은 사진들이다. 네 자매가 나이 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40장의 사진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자리를 옮기지 못했다. 가격은 40만 유로(약 5억5000만 원)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파리에 갤러리를 가지고 있는 타데우스 로팍은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인 이자벨 위페르를 기획자로 초대해 미국 사진 작가 로버트 마플토르프(1946~1989) 재단의 소장품 중 ‘여성’에 관한 작품을 골랐다. 위페르의 감성과 기획력이 돋보인 자리였다.

기획력으로 부스의 협소함을 이겨낸 갤러리도 많았다. 런던의 헤켈버리(Hackelbury) 갤러리는 사진이 어떻게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회화 같은 사진을 찍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하얀 바탕에 굵은 검은 붓질을 한 그림을 보는 느낌을 주는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게리 파비앙 밀러(Gary Fabien Miller), 도널드 저드의 설치 작품 같은 기하학적 색채 배열을 사진으로 담은 이안 매키버(Ian McKeever)가 대표적이다.

기록으로서의 사진도 빠질 수 없었다. 런던과 뮌헨에 문을 연 다니엘 블로(Daniel Blau) 갤러리는 2차 대전 당시 시사 잡지 라이프(LIFE)를 위해 활동했던 스무 명의 다큐멘터리 사진 기자들이 남긴 생생한 전쟁 기록 사진을 ‘LIFE+WAR, 1943-1945’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스무 명 중 열아홉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들이 남긴 사진들은 인류가 남긴 역사의 과오에 대한 질문을 영원히 남기고 있었다.

윌리엄 이글스톤의 ‘무제(스낵바)’(1976/2014), Pigment print, ⓒ Eggleston Artistic Trust Exhibitor : GAGOSIAN
빈티지 사진의 매력 발견하는 기쁨
희귀한 빈티지 사진은 항상 눈길을 끈다. 사진 예술사에 기록된 브라사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어빙 펜, 윌리엄 클라인, 리처드 아베돈 등의 흑백 사진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파리 포토의 매력이다.

빈티지 사진 갤러리를 이야기하자면 해마다 멋진 부스 디자인으로 관심 받는 런던의 해밀턴 갤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패션과 초상 사진계의 거장 호스트 P. 호스트(Horst P. Horst)가 1930년에서 50년 사이 찍은 플래티넘 프린트를 회색빛 부스 안에 모아 놓았다. 부스 외벽에도 93년 리처드 웟슨이 모델 케이트 모스의 뒷태를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 사진가들의 오래된 사진을 발굴하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데 로즈(Lumiere des Roses) 갤러리도 돋보였다. 18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활동했던 무명 사진 작가들의 작품만 팔고 있었는데, 이제 노랗게 색이 바랜 프랑스인들의 옛 생활상과 로맨틱한 풍경이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 덕분인지 판매도 활발했다.

경매장에서도 좋은 소식들이 날아왔다. 프랑스 경매 회사 아르큐리알(Art Curial)에서 있었던 사진 경매에서는 초현실주의 사진의 대표작가인 만 레이(Man Ray)가 1930년 찍고 70년 프린트한 ‘기도하는 여인(La prière)’이 2만에서 3만 유로의 추정 가를 훌쩍 넘어 19만 4000유로(약 2억6630만 원)에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예술 사진의 선구자인 구스타프 르 그레이(Gustave Le Gray)가 1857년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26만9000 달러(약 2억9571만 원)에 팔리면서 작가의 사진 중 최고 기록을 냈다.

중국에서 금지된 사진만 모은 ‘파리-베이징 갤러리’
사진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동양 갤러리들의 참가는 아직 낮은 편이지만 일본과 중국 작가를 소개하는 갤러리들이 돋보였다. 타이페이의 비욘드 갤러리는 ‘기억에 관하여(Regarding Memory)’라는 제목으로 대만 작가 슌주첸(Shun-Chu Chen, 51)의 개인전으로 부스를 꾸몄다. 대만에서 예술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슌주첸은 자신의 아버지가 찍은 사진에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마치 타일을 끼워넣듯 붙여 넣으며 가족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오버랩시켰다. 그는 10년에 거쳐 대만의 평범한 실내와 실외를 배경으로 지인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찍어 200여 장의 흑백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번에 전시된 뒷모습 시리즈는 10만 유로에 유럽의 한 개인 컬렉션에 팔렸다.

가장 대담한 부스를 선보인 곳은 파리-베이징 갤러리였다. ‘THE RED LINE, Censored photographs in China’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전시금지 딱지를 받은 작품만 모아놓았다. 천안문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과 중국 아방가르드 예술이 탄압받던 90년대 초 나체 퍼포먼스를 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마 류밍의 사진, 세계의 독재자들을 합성으로 모아놓은 가오 브라더스의 작품, 중국 젊은 세대들의 성적 유희를 기록한 항 렌의 작품 등이었다.

도쿄의 MEM 갤러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피해 지역에서 피어난 벚꽃을 시리즈로 촬영한 가츠미 오모리(Katsumi Omori)의 사진을 소개했다. 거대한 재앙의 절망 속에서 봄이 오면 어김 없이 피어나는 벚꽃을 평범한 스냅 샷처럼 촬영한 이 시리즈의 사진들은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했지만, 문명의 이기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 허무로 남는지 일깨워주기도 했다.

파리 포토에 단골로 등장하는 일본 사진 작가 노부요시 아라키(Nobuyoshi Araki)의 작품은 도쿄의 다카이시(Taka Ishi) 갤러리가 소개했다. 밧줄에 묶이고 매달린 나체의 여인들과 에로틱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의 꽃을 찍은 그의 작품은 이미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들과 개인 컬렉터들에게 인기다.

올해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참가한 갤러리는 오사카 출신의 ‘더 써드(The Third) 갤러리일 것이다. 이 갤러리가 20년 동안 소개해 온 미야코 이시우치(Miyako Ishiuchi)는 사진 예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하셀블라드 사진상의 2014년도 수상자가 됐다. 올해 67세인 이시우치는 남성 위주의 사진 예술계에서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공로가 인정됐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어머니(mother)’라는 제목으로 어려서 사별한 어머니가 남긴 물품들을 찍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이시우치는 일본 근현대사와 개인의 역사를 여성적인 감수성으로 포착해 보는 이들의 감성적 공감을 끌어내 왔다.

한국에서 온 갤러리는 없었지만 프랑스의 소수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파리의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 갤러리는 구본창 작가의 도자기 시리즈와 이정진 작가의 대나무 시리즈, 파리의 RX갤러리에서는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시리즈를 각각 선보였다. 배 작가의 작품은 일간지 피가로의 발레리 뒤퐁셀이 선정한 ‘파리포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작품 10’으로도 언급됐다.


파리 글 최선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hee.lefur@gmail.com, 사진 파리 포토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