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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육지 사이 해군과 육군 사이 거기 새로움이 있다

중앙선데이 2014.11.22 02:31 402호 21면 지면보기
“대륙 파워와 해양 파워 중 한국은 어디에 속하는가, 응답하라”고 했던 시리즈 모두(冒頭)의 이야기가 에디슨과 테슬라로, 다시 유선과 무선으로 엮어졌다. 이것이 바로 하이퍼 텍스트이고 새로운 지(知)의 담론 방식이구나.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11> 컨테이너와 해병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앞으로는 해양과 대륙의 이항 대립이 아니라 그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생각해 봐. 대륙 세력은 전쟁으로, 해양 세력은 무역으로 세계를 제패하려 했어. 그런데 무역에 혁명을 일으킨 것은 거함 거포가 아니라 작은 알루미늄 상자였어.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말콤 맥린이 발명한 것, 우리가 지금 이 정도 살게 된 것도 바로 이 마법의 상자 덕분이지.”

“그 상자란게 뭔가요?”

“컨테이너야. 육지와 바다는 수송 시스템이 전혀 다르잖아. 트럭으로 짐을 실어와 풀어서 배에 옮겨 싣고 가서는 다시 또 내려야지. 그 과정에서 손상·분실·시간·비용이 크게 발생했거든. 그런데 한 트럭 운전사가 그 불편을 더는 기발한 생각을 한 것이 컨테이너 상자란 말이지. 트럭과 배, 육지와 바다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이 상자만으로 간단히 메울 수 있었거든. 땅과 바다의 차이를 없애버린 사고의 전환이야.”

말콤 맥린(Malcom McLean·1913~2001), 바로 이 사람이었구나. 컨테이너를 발명하고 세계적인 운송업체가 된 ‘Sea Land’를 창업한 인물. 포브스가 2007년 ‘20세기 후반 세계를 바꾼 15인’ 중 하나로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고속도로나 항구에서 쉽게 보는 그 컨테이너에 21세기가 담겨 있었다니 놀랍다.

“해병대도 마찬가지야. 이게 육군과 해군을 그냥 모아놓은 게 아냐. 바다에서도 싸우고 육지에서도 싸울 수 있는, 땅과 바다의 새로운 인터페이스에서 생겨난 군대지. 하늘과 땅에서 싸울 수 있는 공수부대도 그렇잖아. 패러다임이 바뀐 거야. 학문에서도 그런 것이 생겨나고 있어. 그걸 우리는 요즘 융합이니 ‘통섭’(統攝·Consilience)이니 하고 부르고 있지.”

컨테이너 같은 것, 해병대 같은 것. 그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1794~1866)이다. “그는 통섭 외에도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었어. 과학자를 뜻하는 사이언티스트(scientist)라는 말도 이 사람이 처음 쓴 말이야. ‘ist’가 붙으면 보통 ‘쟁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당시엔 반발도 많았대. 그전까지는 ‘내추럴 필러소퍼(natural philosopher)’나 ‘맨 오브 사이언스(man of science)’로 불렸는데 이상하다 이거지.”

이 교수는 그가 괴테 작품을 번역했을 정도로 언어와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학문세계의 해병대라는 이야기다. 아이작 뉴턴과 함께 케임브리지대에 동상이 서있을 정도인데, 우리는 통섭이란 말은 알아도, 그 말을 퍼뜨리는 에드워드 윌슨은 알아도, 그 말을 창조해 낸 진짜 개혁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오래된 이야기야. 우리는 지금도 고등학교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만 이 폐단은 이미 백 년 전에 영국에서 제기됐어. C.P. 스노우가 쓴 ‘두 개의 문화’는 쉽게 말해 ‘뉴턴(물리학)’과 ‘셰익스피어(문학)’가 완전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현상을 비판한 글이지.”

바다와 땅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육해공군으로 싸우는 세상이 아니다. 학문 역시 새로운 인터페이스에서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는 말만 통섭이지 그걸 상상도 실감도 하지 못한다. 이 교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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