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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교사와 조폭이 고향 같다고 어울려 … 미국선 상상도 못 해

중앙일보 2014.11.22 00:37 종합 16면 지면보기
존슨 펄트 박사는 한국의 조폭을 연구하기 위해 당국의 통계나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건달에서부터 전직 장관까지 다양한 사람을 직접 만났다. 그는 “한국을 사랑해 시작한 연구”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 미국인이 있다. 그는 한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제는 경제도, 정치도, 요즘 뜬다는 K팝도 아니다. 조직폭력배, 줄여 조폭이다. 존슨 펄트 일본 호세이(法政)대 방문강사 얘기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와 인터뷰했다. 그가 왜, 어떻게 한국 조폭에 대한 연구를 했는지 펄트의 시각에서 입말로 풀어봤다.


한국 조폭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존슨 펄트

 내 이름은 존슨 펄트(Jonson N Porteux). 1977년생 뱀띠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지난해 미국 미시간대학 정치학과에서 한국 조직폭력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의 인연은 한국인 사범께 태권도를 처음 배운 일곱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가 바뀌는 과정을 공부하는 전환경제학에 흥미를 느꼈다. 북한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당분간 변할 것 같지 않아 대학원에서 전공을 비교정치학으로 바꿨다. 정치학에선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일부 사적 집단이 폭력을 행사한다. 왜 그런 게 가능한지 늘 궁금했다. 2009년 김정길 전 법무부 장관이 미시간대학에 방문교수로 왔다. 나는 김 전 장관 연구실 조교가 됐다. 그의 지도와 도움으로 한국의 조폭 연구가 시작됐다. 2010~2011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뽑혀 한국에서 현장연구를 진행했다.



 초기엔 검사·경찰관·언론인·교수만을 만났다. 어느 날 잘 아는 체육관 관장으로부터 지역 정치인을 소개받았다. 그를 통해 전국구 두목을 만났다. 그를 “오야붕”이라고 불렀다. 오야붕이 “쫀슨, 너 한국 건달 보고 싶어”라고 물었다. 건달은 깡패·양아치와 다르다. 건달 보고 깡패 또는 양아치라고 부르면 큰일이 난다. 깡패는 조직이 없으며, 양아치는 동네 불량배다. 깡패와 양아치는 건달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건달은 깡패와 양아치를 통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자 ‘두목행사’에 데려갔다. 전국구 두목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자리다. 일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막후세력자’다. 두목행사는 겉으로 보기엔 칠순잔치·돌잔치·결혼식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린다.



 전국구 두목과 막후세력자 15~20명은 따로 작은 방에서 새로운 사업을 논의하거나 내부 분쟁을 해결한다. 참석자 상당수는 ‘범죄와의 전쟁’ 때 교도소를 다녀왔다. 두목행사에 참가하려면 매번 축의금 형식으로 돈을 내야 한다. 액수는 조직 규모에 따라 다르다. 보통 400만~500만원이라고 들었다. 그들은 종종 내게 자리를 비워달라고 한다. 난 무슨 얘기를 할지 관심이 없었다. 민감한 정보를 알게 되면 위험에 처할 수 있어서다. 건달들에게 늘 “경찰이 모르는 걸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한국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건 눈덩이를 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 한 사람을 뚫으면 그를 통해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 향우회·동창회 덕분이다. 한국에선 초등학교 교사와 조폭이 단지 같은 학교나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함께 어울린다. 미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두목급을 알게 되면서 수하 행동대장들과도 인사할 수 있었다. 행동대장급은 소속 파(조직)가 달라도 또래끼리 잘 어울린다. 미국의 마피아는 다른 조직원과 그다지 만날 일이 없다. 이런 식으로 상당한 수의, 또 다양한 부류의 조폭을 직접 만나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건달을 만나도 이름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들도 내게 명함을 주지 않았다. 실제론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냥 ‘형님’이라고 불렀다. 별명이 있으면 ‘형님’ 앞에 붙였다. 한 형님은 영어를 조금 했다. 그는 다른 형님들을 가리키며 “저 양반들은 은퇴했어. 나는 ‘ing’(영어 진행형을 뜻하며 자신이 아직 현역이라는 의미)야”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ing 형님’이 됐다.



 처음엔 건달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다. 건달은 매우 마초적인 집단이다. 모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욕은 입에 달고 산다. 남을 위협하는 게 장기니 더 그렇다. 나도 그들과 같은 부류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소주 5병까지 마신 적이 있다. 형님들과의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 형님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왔어. 난 미국사람 싫어.” 술에 취한 그는 사방에 물을 뿌렸다. 옆에 있던 형님이 내게 물병을 주면서 “너도 저 XX에게 뿌려”라고 했다. 막상 술 취한 그의 눈을 쳐다봤더니 살기가 느껴졌다. 옆 형님은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라고 계속 나를 채근했다. 딜레마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끝에 일어나 물을 내게 부었다. 모두 웃으며 손뼉을 쳤다. 이후 그 형님은 나를 좋아했다.



 주로 낮엔 경찰을, 밤이 되면 건달을 만났다. 어느 날 경찰관과 점심을 먹었다. 조금 뒤 경찰서 앞에서 건달 차를 탔다. 그리고 건달과의 점심 약속장소에 갔다. 난 경찰과 건달을 많이 안다. 그래서 경찰관은 만날 때마다 내게 정보를 달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 내가 건달에 대해 아는 게 경찰보다 많기 때문이다. 반면 건달들은 내게 경찰과 끈이 닿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양쪽의 청을 모두 거절했다. 내 연구를 위해서였다. 논문을 위해 건달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권력과의 유착관계 등 민감한 질문이 많았다. 건달들은 인터뷰를 싫어했다. 그래도 전국의 건달 20명에게서 답을 받았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는 논문에서 빠졌다. 연구를 도와준 건달들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건달은 보통 한밤중 나를 밖으로 불렀다. 오전 2~3시에도 전화가 왔다. “쫀슨, 뭐해. 부산 가자.” 이런 식이었다. 그들과 전국을 돌아다녔다. 2~3일 일정이었다. 한번은 새로 뽑은 BMW 750을 타고 포항을 다녀왔다. 스피커에선 힙합이 크게 울렸다. 48시간 잠을 못 잔 상태라 몽환적으로 들렸다. 건달들과는 늘 크고 좋은 차만 탔다. 고급 호텔에 묵었고, 값 비싼 보트도 탔다. 2012년 미국으로 돌아온 뒤론 낡은 혼다를 몰았다. 정말 비교가 됐다. 내가 만난 건달들은 대부분 돈이 많았다. 한국의 폭력조직은 실력주의가 원칙이다. 똑똑한 사람만이 행동대장→부두목→두목으로 승진한다. 똑똑하지 않으면 조직에서 버티기 힘들다.



 지난 2년간 나는 조폭 세계에서 ‘내부의 국외자’로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 경찰의 끄나풀이 아니니까. 건달들도 한국어를 하는 백인에게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흥미만으로 나를 만났던 게 아니었으리라. 우린 서로 간에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었다고 본다. 언젠가 오야붕은 “너, 오야붕 사랑해?”라고 물었다. 나는 “네”라고 답했다. 지금도 오야붕과 연락한다. 오야붕은 내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걸 안다. 그래서 이 기사가 오야붕, 수많은 형님들과 쌓아온 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S BOX] 재개발·노점상 철거 … 국가가 용역회사에 폭력 하청하는 셈



존슨 펄트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경찰, 준군사조직, 민족주의자, 그리고 폭력조직: 한국의 건국 과정’이다. 다음은 그의 연구 요지다.



 “결론은 국가가 조폭 등 폭력을 사용하는 사적 집단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적당한 협력관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길 꺼리는 상황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결과다.



 나는 용역회사에 주목했다. 1970~80년대 재개발 사업이 한창일 때부터 철거용역은 조폭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국가가 용역회사에 폭력을 하청하는 셈이다. 2011년 5월 인사동에서의 노점상 단속을 보고 나서 이 같은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당시 종로구청 측이 동원한 용역들이 노점상 리어카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는데도 경찰이 지켜만 보는 장면을 목격했다. 할머니 노점상이 피를 흘리면서 경찰관에게 ‘너희는 뭐하고 있나’라고 따졌다. 물론 노점상이 불법이고, 폭력 상황을 협상에 이용하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단속은 경찰이 한다. 한국 경찰은 당시 폭력을 ‘가두려고’만 했지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용역회사를 동원한다고 한국 공권력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건 아니다. 살인·강도 등 피해자가 있는 범죄엔 한국의 공권력은 강력히 대응한다. 그러나 도박·매춘 등 피해자가 없는 범죄엔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용역회사 동원엔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이나 차이가 없었다. 누가 배후에 있는지가 달랐을 뿐이다. 이 같은 내용이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어느 국가에서든 정도만 다를 뿐이다.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마피아와 같은 대규모 폭력조직을 거의 다 뿌리 뽑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사실은 다르다. 한국 조직범죄의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외부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숨겨졌을 뿐이다. 폭력조직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폭력행사를 자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권력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글=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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