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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취리히통신] “카탈루냐 등 다들 독립하려 난리인데, 한반도만 통일 원하다니 … ”

중앙일보 2014.11.22 00:29 종합 24면 지면보기
‘카탈루냐 민족의 날’인 지난 9월 1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분리 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 [사진 catalunyaforces.cat]
타카뇨(tacanyo). ‘구두쇠’라는 뜻의 이 단어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민들을 부르는 별명입니다. 실제로 카탈루냐인들이 스페인 타 지방 사람들에 비해 더 인색할까요? 그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경제 엔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중해 해안에 자리잡은 덕에 일찍부터 유럽·아프리카 국가들과 교역이 활발했고, 햇볕이 좋아 스페인 최대의 와인 생산지도 여기에 자리잡고 있죠. 오랫동안 화학·섬유 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최근엔 정보통신(IT) 산업이 활황입니다. 가우디의 건축물 등이 이끄는 관광 수입도 대단하고요.



 문제는 스페인 중앙정부가 카탈루냐에서 걷은 막대한 세금을 대부분 수도 마드리드와 타 지방에 투자해 왔다는 겁니다. 이런 경향이 유럽 재정 위기 이후엔 더 심해졌고요. ‘왜 우리가 낸 만큼 돌려주지 않는 거냐’고 항의하는 카탈루냐인들에게 여타 지역민들은 국가를 위한 건데 인색하게 군다며 손가락질을 했죠. ‘타카뇨’라는 별명이 붙은 건 그래서고요.



 나라를 위해 금 모으기 운동까지 했던 한국인들에겐 좀 낯설 것도 같습니다. ‘지역 갈등이 심하다 해도 한 나라인데 돈 계산을 칼같이?’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카탈루냐 지역의 대표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 나고 자란 제 친구 조르디 산체스(31)는 이런 의문에 그야말로 칼같이 대답했습니다. “카탈루냐와 스페인은 한 나라가 아니야.”



 카탈루냐가 1714년에 와서야 스페인에 합병된 역사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카탈라(Catala·카탈루냐어)는 언어학적으로 스페인어보다 오히려 이탈리아어에 가까워. 스페인어만 쓰는 사람들은 카탈라를 들으면 이해를 못 해. 우리가 먹는 지중해식 요리도 마드리드 중심의 스페인 전통 요리와는 다르지. 나는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에게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어.”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게 한 지역이 국가로부터 독립할 충분한 이유가 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프랑코 독재 시절엔 카탈라 사용을 금지하는 등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짓밟았고, 이번 주민투표도 치르지 못하게 막았잖아. 세금 뺏기고 자유 뺏기고, 스페인에 계속 남아야 할 이유가 뭐지?”



 2010년 6월,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카탈루냐의 자치법규를 축소시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과거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 자치권을 확대하는 데 동의한 뒤 카탈루냐인들이 직접 주민투표로 만들었던 자치법을 말이죠. 민심 이탈이 가속화된 건 이때부터입니다. 2012년 9월 11일(9월 11일은 ‘카탈루냐 민족의 날’로, 1714년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귀속된 날입니다), 100만 명 이상이 바르셀로나 도심에 모여 자치권 확대를 외쳤습니다. 이듬해인 2013년 같은 날엔 카탈란 의회가 주도해 전 국토의 남북을 잇는 인간띠를 만들었죠. 지난 9월 11일엔 바르셀로나에서 V자 모양으로 뻗은 주요 간선도로 두 개를 시민들이 꽉 채웠습니다. ‘Vote(투표)’와 ‘Victory(승리)’를 상징하는 인간 모자이크는 지난 9일 치러진 비공식 주민투표에서 현실화됐습니다. 중앙정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총 540만 명의 유권자 중 절반 가까이가 투표해 80% 이상이 카탈루냐 독립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은 21세기 들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듯합니다. 과거의 민족이 가능하면 세를 불리고 덩치를 키우려 했다면 오늘날의 민족은 규모를 줄여서라도 실속을 챙기려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가 과감히 분리 독립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게 북해 유전을 등에 업은 덕분이고,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카탈루냐·바스크가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죠. 이익 관계에 따라 합치거나 갈라서는 민족은 더 이상 숭고하지도, 신화적이지도 않습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말했듯 “사실 ‘민족’은 특허를 얻기 힘든 발명품임이 증명”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역사·언어·혈연 등에서 여전히 절대적인 공통분모를 가진 채 갈라서 있는 한국과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존재입니다. 조르디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 이유입니다. “다들 독립하려고 난리인데 한반도만 그 반대야. 갈라선 민족이 통일을 하려고 하다니, 21세기의 신화인 셈이지.”



김진경 jeen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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