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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구조견, 사람보다 후각 1만 배 뛰어나고 청각 40배 밝아

중앙일보 2014.11.22 00:27 종합 24면 지면보기
119 구조견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천둥’(왼쪽)과 ‘세중’이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 훈련장에서 핸들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월 14일 오후 7시쯤 부산소방본부 119 지령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경남 양산시 매곡동 시명산을 내려오던 등산객 3명이 길을 잃어 탈진 상태니 속히 구조해달라는 신고였다. 119 구조대원 20여 명과 부산소방본부 구조견 ‘세중’과 ‘천둥’이 긴급 출동했다. 119 구조대원들은 등산객이 신고한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양산 대운중 뒷산을 수색했지만 허탕이었다.

전국 최강 119 인명 구조견 ‘세중’‘천둥’



 그런데 코를 킁킁거리던 세중이 맞은편 불광산으로 올라가더니 네 시간여 만인 오후 11시30분쯤 불광산 9부 능선에서 “컹, 컹”하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등산객을 찾았다는 신호였다. 세중은 사흘 뒤인 2월 17일엔 천둥과 함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에 투입돼 10여 명을 구조하고 시체 한 구를 찾아냈다.



 세중과 천둥은 전국에서 활약하는 119 구조견 22마리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지난 3∼5일 중앙119구조본부에서 열린 ‘2014 전국 인명 구조견 경진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산악수색 부문 장애물 통과와 명령 수행능력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세중은 지난해 5월 열린 국제구조견 자격인증평가에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재난·산악 등 2개 부문에서 국가 공인 1급 자격을 땄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9월엔 네덜란드에서 열린 인명 구조견 세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세중은 8살짜리 셰퍼드 수컷이고 천둥은 6살 된 골든레트리버 수컷이다. 사람으로 치면 세중은 50대고, 천둥은 40대로 중년의 나이다. 이들 구조견은 ‘핸들러’라고 부르는 소방관들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출동 때도 오로지 핸들러의 지시만 따른다. 세중은 김용덕(41) 소방위, 천둥은 서태호(33) 소방교와 팀을 이루고 있다. 둘 다 소방관을 대상으로 하는 핸들러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



 구조견 핸들러가 되기 위해서는 중앙소방본부 인명구조견센터에서 6주 기본 훈련을 마쳐야 한다. 이후 첫해에는 매달 1주씩, 2년 차부터는 석 달에 1주씩 훈련을 받는다. 훈련은 혹독하다. 견사 하수구에 있는 개똥을 맨손으로 끄집어내야 하고 구조견과 견사에서 잠도 같이 자야 한다.



훈련 도중 장애물을 넘고 있는 천둥(앞)과 세중.
 “개가 아닌 동료와 친구로 받아들이는 훈련이죠. 개와 사람이 충분히 교감해야 구조 결과도 좋거든요.” 수색을 위해 구조견과 함께 달릴 수 있으려면 산악 훈련과 육상 훈련은 기본이다. 항상 개와 같이 지내다 보니 몸에선 개 냄새가 떠날 날이 없다.



 이들이 구조견에게 중점적으로 시키는 훈련은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인 부유취(浮遊臭)를 빨리 맡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늘 세포가 떨어져 나오면서 냄새를 풍긴다. 인명 구조견은 사람보다 1만 배 뛰어난 후각과 40배 밝은 청각을 갖고 있다. 특히 부유취가 고정된 표적을 찾도록 훈련받는다. 사고로 건물 더미에 깔리거나 사람이나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체 추적 훈련을 위해 자신들의 피를 뽑아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엔 가까운 곳에 묻어뒀다가 조금씩 거리를 멀리하며 훈련 강도를 높여간다.



 암수 모든 구조견은 중성화 수술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출동 때 야생동물들이 풍기는 냄새로 인해 구조활동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암컷은 발정기가 오면 출동을 못 하는 단점이 있어 되도록 피한다. 먹이도 한 끼에 250g씩 하루 두 번만 준다. 살찌면 출동에 지장이 있고 배가 부르면 게을러지기 쉬워서라고 한다. 모든 사육 조건이 오로지 인명 구조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구조견으로 선발돼 일선에 배치되기까지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한다. 구조견을 한 마리 양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2∼4년이다. 한 마리 양성비는 2억원 정도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인명 구조견으로 합격하는 비율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세중은 훈련 기간이 4년, 천둥은 2년 걸렸다. 구조견은 생후 8∼24개월 된 개를 데려와 훈련시킨다. 예전엔 삼성그룹 구조견센터에서 훈련시켰지만 지금은 중앙소방본부 인명구조견센터가 맡고 있다.



 뛰어난 구조견들은 농촌진흥청과 수암 생명공학연구원 등에서 복제견으로 만든다. 현재 복제견 두 마리가 훈련 중이다. 수색 능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곧바로 은퇴를 시킨다. 인터넷 공고를 낸 뒤 분양받을 희망자를 찾는다. 분양 후라도 구조견이 죽으면 데려다 화장한 뒤 묘지로 만들어준다.



 부산소방본부 견사 옆에는 구조견 ‘날쌘’의 묘가 있다. 날쌘은 2000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3년간 131회 수색에 참가한 독일산 셰퍼드다. 날쌘의 묘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고귀한 생명을 구하다 생을 마감한 날쌘, 영원한 빛이 되어 여기에 잠들다’. 늘 과욕과 실수로 위험에 처하는 인간을 구하러 구조견들은 오늘도 수색에 나서고 있다.





[S BOX] 고려시대 ‘오수의 개’가 인명구조 원조



인명 구조견에는 붕괴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는 재난 구조견, 산악에서 실종자를 구해내는 산악 구조견, 바다나 강에서 활약하는 수난 구조견, 숨진 사람을 찾는 시체 탐지견 등 네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는 재난과 산악 구조견 두 종류만 운영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1814년 알프스의 한 수도원이 조난자를 찾기 위해 훈련시켰던 ‘배리’라는 개에서 유래를 찾는다. 어느 날 배리는 조난자를 찾아냈지만 늑대로 오인한 조난자의 흉기에 찔렸다. 피를 흘리며 수도원으로 돌아온 배리는 끝내 숨을 거뒀다. 이후 수도승들이 배리의 핏자국을 뒤따라가 조난자를 구조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최자(崔滋)가 1230년에 쓴 『보한집(補閑集)』에 나오는 전북 임실군 김개인의 개를 유래로 본다. 김개인이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들불이 일자 개가 개울에서 자기 몸을 적신 뒤 풀밭을 뒹굴며 불을 꺼 주인의 목숨을 구하고 숨졌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김개인은 이 사실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를 묻어주고는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 나중에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은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자를 합해 ‘오수의 개’라 부르게 됐다.



부산=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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