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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사람의 가치’ 숫자로 잴 수 있나 … 철학자들 괴롭혀온 윤리 퍼즐

중앙일보 2014.11.22 00:06 종합 29면 지면보기


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152쪽, 1만2000원




1967년 영국 철학자 필리파 풋이 고안해 낸 ‘트롤리(trolley·전차) 문제’라는 게 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첫머리에 소개해 익숙해진 일종의 ‘윤리 퍼즐’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달린다. 선로에 다섯 명의 인부가 있고, 갈라진 다른 선로 위엔 한 명이 있다.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열차를 그대로 둬 다섯 명을 죽게 하겠는가, 아니면 선로를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킬 것인가.



 “당연히 선로를 틀어야지”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공리주의적 판단을 한 거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 하에 한 명보다 다섯 명의 목숨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떤가. 당신은 철로 위 육교에 있고,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려면 무거운 물체를 떨어뜨려 전차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 마침 당신 앞에 몸집이 큰 남자가 서 있다. 당신은 그를 육교에서 밀어 떨어뜨려 전차를 멈추게 하겠는가.



토머스 캐스카트
 비슷한 문제 같지만, 두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갈린다. 약 5000명이 참여한 인터넷 설문에서 첫 번째 상황에서는 89%가 선로를 지선으로 돌리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육교 위 사람을 떠미는 두 번째 상황에 대해서는 11%만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을 죽여 다섯을 구하는 결과는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른 결정을 했을까.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이 문제를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변호인과 검찰, 배심원, 종교인 등이 차례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선로를 바꾼 여성을 2급 살인죄로 기소한 검찰은 ‘사람을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는 칸트의 주장을 빌려 온다. 다른 선로에 있다 죽은 남자는 목숨을 빼앗기기 않을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타인의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윤리 직관주의’를 내세운다. 선로를 바꾸는 것(간접적 행위)과 앞에 있는 남자를 떠밀어 죽이는것(직접적 행위)은 사람들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며, 이런 느낌에 의거해 판단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칸트·니체·벤담·아퀴나스·피터 싱어 등 쟁쟁한 철학자들의 복잡한 사고실험이 등장하지만 유쾌한 문체와 드라마틱한 구성 덕에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게 장점이다. 올 봄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내가 선장 혹은 승무원의 위치에 있었다면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렸을까 고민해 본 이라면 이 논의가 더 절실히 와 닿을 지 모른다. 물론 저자는 무엇이 옳다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한 가지 이유는 어떤 직관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이 다른 편의 사람들보다 논리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논리적 추론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서운’ 결론을 던진다. “여러분이 탄 전차가 갈림길에 서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하라. 아울러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말할 수 있길.”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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