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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나이 들면 왜 새벽에 눈이 떠질까

중앙일보 2014.11.22 00:06 종합 29면 지면보기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1844~1910)의 ‘잠자는 집시’(1897). 잠을 자는 동안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인 꿈은 통찰의 원천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 해나무]


잠의 사생활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352쪽, 1만6000원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건 사실 큰 복이다. “편안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정겨운 인사말이 이를 증명한다. 이 말은 밤새 도둑의 침범이나 화재를 비롯한 ‘위험한 돌발사태’가 없어 다행이라는 뜻에서 왔다고 배웠다. 모든 사람이 머리를 눕히자마자 곯아떨어진다든지, 잠만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어 아침까지 계속 쉴 수 있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잠자는 일이 그렇게 쉽고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은 물론 밤새도록 베개를 안고 아예 헤엄을 쳐 본 사람이 부지기수다. 잘 수 있어도 그 버릇이 험한 사람이 적지 않다. 잠결에 홀로 걸어다니거나 혼자서 황당한 말을 중얼거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본인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과 대화까지 나누기도 한다. 로이터 통신의 기자로 뉴욕저널리즘대의 겸임교수인 지은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편히 쉴 수 없는 이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고민도 꽤 했다. 불안해서 의사를 찾아가도 뾰족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잠에 관한 과학적·사회적인 지식을 직접 찾아 나섰다. 이 책은 그 여행의 결과다.



 사실 우리는 잠에 대해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곡기는 한 달 가까이 끊을 수 있고 물 없이도 1주일 가까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강제로 잠을 자지 못하게 되면 사나흘 안에 결단이 난다. 광인이 되거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게 과학적 연구 결과다.



데이비드 랜들
 사실 잠을 연구하는 과학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심지어 과학자들은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수면 중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고 오해를 했다. 잠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온 건 놀랍게도 1952년부터다. 시카고 의대 대학원생이던 윌리엄 디멘트는 잠이 든 사람의 안구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른바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이다. 렘 수면 동안 인간의 뇌는 깨어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인간의 뇌가 각성과 수면, 렘 수면의 세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뇌의 활동과 잠이 깊은 연관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순간이다. 이 수면이 진행되는 동안 꾼 꿈은 보다 선명하게 기억된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는 동안 얕고 깊은 다섯 단계의 수면 상태를 계속 반복한다는 사실도 나중에 밝혀졌다.



 연구에 따르면 지금 우리의 수면 패턴은 현대 문명이 낳은 결과다. 전기가 생기기 전까지 서양 문명권에서 상당수 사람은 잠을 두 차례 잤다. 해지고 얼마 있지 않아 잠이 든 다음 자정이 조금 지날 무렵 일어나 한 시간 정도 깨 있다가 다시 아침까지 잤다. 한밤중 잠과 잠 사이의 한 시간여 동안 사람들은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거나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눴다. 방금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생각하기도 했다. 옛 사람들이 꿈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16세기 한 프랑스 의사는 노동자가 아이를 여럿 낳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한숨 자면서 충전된 에너지로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잠 문화가 다산성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근대 이전의 한국도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조명이 없는 곳에서는 지금도 이런 식으로 자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자는 잠의 패턴이 자연의 설계와는 다른 셈이다. 잠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잠 이야기를 하면서 꿈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개인병원 의사이던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00년 『꿈의 해석』을 펴낼 때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꿈을 무의미하거나 어떤 신비로운 계시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프로이트 이후 세상 사람들이 꿈을 완전히 과학적으로 본 것도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꿈을 불안이나 저항, 호소 등 다양한 심리적인 현상의 재현으로 여겼다. 하지만 대중은 프로이트의 주장을 ‘꿈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성(性)적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억압돼온 충동을 반영하고 드러낸다는 이론’으로 축소해 이해한다. 사실 프로이트조차 잠의 과학에 깊이 접근한 것은 아니며 그나마 세상에서 많이 오해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에 따르면 잠은 여전히 과학적인 연구가 충분하지 못하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편안한 잠을 자는 방법을 연구하는 수면의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다. 잠은 인간에게 과학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은 인간에게 우주에 가고 싶은 것만큼 커다란 희망이다.





[S BOX] 각방 쓰는 부부들은 …



잠은 과학이지만 논란을 부르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부부 동침은 사회적 습관일 뿐 본능적인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 서리대 교수인 닐 스탠리는 2009년 과학행사에서 “아내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은 사랑을 나누기엔 좋겠지만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연구 결과 딴 사람과 침대를 함께 쓰면 자다가 방해받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50% 더 크다는 게 근거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사람은 이혼·우울증·심장병을 겪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물론 한 침대를 써서 얻는 정서적 이익이 훨씬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에머리대의 인류학자 캐럴 워스먼은 인간의 수면 패턴이 세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은 일찍 잠들기 어렵고 아침에는 그냥 두면 10시까지 잔다. 노인은 저녁에 일찍 잠들지만 서너 시간 이상 연속 잠들기가 쉽지 않다. 중년은 수면도 ‘낀 세대’다. 상황이 허락하면 일찍 자지만 필요하면 밤샘도 거뜬하다. 워스먼 교수는 이런 패턴이 밤새 맹수들이 인간을 위협했던 원시시대 습성에서 비롯한다고 풀이했다. 행동이 둔한 노인은 깊은 잠에 빠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기때문에 오래 잘 수 없다는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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