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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전염병 매개체 밝히는 데 38년 걸린 까닭

중앙일보 2014.11.22 00:06 종합 31면 지면보기
말라리아의 씨앗

로버트 데소비츠 지음

정준호 옮김, 후마니타스

336쪽, 1만5000원




한 소녀가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죽었다. 이름은 수쉴라. 1980년대 인도 중부 비하르 지역에 살던 13세 아이다. 한 달 동안 미열이 있었고, 몸은 계속 말라갔다. 그리고 배는 잔뜩 부풀었다. 13㎞를 걸어 도착한 병원에서 ‘리슈만편모충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죽지 않을 수 있다. 약을 사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약을 사려면 소를 팔아야 했다. 온 가족이 굶어죽는다는 뜻이다. 수쉴라는 3개월 후 숨을 거뒀다. 약 값은 300루피(약 1만5000원)였다.



 리슈만편모충증은 무굴 방언으로 칼라아자르, ‘검은 병’이다. 지금도 매해 130만 명이 이 병에 걸리고, 3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 저자는 수쉴라의 목숨을 앗아간 기생충을 추적한다. 그리고 실험실 안의 과학이 수쉴라의 상황을 왜 바꾸지 못했는지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첨단 과학이 펼쳐지는 연구실은 당장이라도 질병을 물리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칼라아자르를 옮기는 것이 모래파리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만 38년이 걸렸다. 여기에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 관료들, 연구비 욕심에 빠진 연구자들, 그리고 여기에 휘둘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었다. 기생충이 인간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말라리아도 마찬가지로 해결할 길이 멀다. 이 책은 1990년 나왔다. 당시 말라리아 감염 인구는 2억 5000만명, 사망자는 250만명이었다. 효과적인 백신은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세계적 제약회사가 발표한 백신은 보호 효과가 30~40%일 뿐이다. 100명 중 60~70명은 말라리아에 걸린다는 뜻이다. 게다가 말라리아의 약물 저항성이 나타나는 지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새로 개발하는 약들이 쓸모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저자는 인간이 기생충과 싸우는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경고한다. 천문학적 연구비를 받은 과학자들은 그에 맞는 성과를 내야 하며, 행정가들은 실험실 안 학문에 대한 지나친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또 대중은 과학의 신화를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비자도 필요 없이 국경을 넘는 병원체”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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