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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왕후장상 씨가 따로 있나” 사마천의 외침

중앙일보 2014.11.22 00:06 종합 31면 지면보기
사기선집

사마천 지음

김원중 편역, 민음사

520쪽, 2만원




무엇이 『신약성경』 마태복음 19장 12절, 중국 무림 기서인 『규화보전(葵花寶典)』,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관통하는 주제일까. 거세(去勢)다.



 거세는 치욕이다. 하지만 거세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마천(기원전 145년께~86년께)이 그랬다. 그는 군주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바른 말 하다 노여움을 샀다. ①죽음 ②막대한 벌금 ③궁형(宮刑) 중 택일하라고 했다. 사마천은 돈은 없었다. 당시 관념으로는 ①번이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③번을 선택했다. 『사기』를 완성하라는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거역할 수 없어서다.



 치욕을 넘는 자가 불멸을 얻는다. 서양에는 헤로도토스(기원전 484년께~430년께), 동양에는 사마천이 있다. ‘역사의 아버지들’이다. 역사학의 양대 산맥이다.



 케리 브라운 시드니대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실은 기고문에서 논란 많은 ‘공자학원’을 ‘사마천학원’으로 개명하자고 주장했다. 사마천은 공자에 버금가는 인물인 것이다. (또 『사기』는 사마천 보다 300년 전 사람인 공자에 대한 최고의 전기(傳記) 자료다.)



명나라 화가 유준(劉俊)이 그린 ‘한전논공도(漢殿論功圖).’ 한 고조 유방이 신하들의 공적을 논하는 모습을 담았다. [사진 민음사]
 『사기』는 왜 읽어야 할까.



 중국을 알기 위해서다.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해 중국 엘리트는 『사기』를 읽었다. 『사기』 없는 수준 높은 대화는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날씨·스포츠·음식 같은 부담 없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관계의 수준을 높이려면 정치·종교·섹스에 대해 허물없이 생각을 나눠야 한다. 중간 단계로 비교적 안전한 담화 주제는 역사다. 역사는 ‘이 사람과 뭔가를 도모할 수 있을까’를 탐색해 볼 수 있는 기준이다.



 인생 성패의 분기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사기』는 성공학의 백미다.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도 이 책이 필요하다. 사마천은 이슬람 역사가 이븐 할둔(1332~1406)과 더불어 제국의 흥망을 다룬 역사가로 손꼽힌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진나라는 온갖 희생과 폭력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하지만 통일로 말미암아 천하가 바뀌었고 엄청난 일들이 성취됐다.”



 한마디로 ‘천지인(天地人)의 이치가 모두 담긴 책’이다. 고대 중국의 동성애, 거부들 이야기도 나온다. 규제 철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나온다. 사마천은 이렇게 묻는다. “정부 지침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4000페이지가 넘는 『사기』를 다 읽으면 좋다. 인생이 짧기에 간추려 읽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기선집』이 출간됐다. 16년 동안 130편 『사기』를 완역하느라 사마천에 ‘빙의’ 되다시피 한 단국대 김원중 교수가 22편을 엄선했다.



 누군가 “『사기선집』이 재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누군가 대답했다.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책이다.”



 마태복음 19장 12절의 말씀은 이것이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가 성경 외에 딱 한 권 더 읽는다면? 『사기선집』이 결론이다.





김원중 교수
[S BOX] 『사기』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 군자가 부자가 되면 덕을 쌓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 소인배가 부자가 되면 권세를 자랑하려 든다.

● 머리는 시세에 따라 변화하기 위해 있다. 용기는 신속한 결정을 위해, 관대함은 공정하게 주고 받기 위해, 힘은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있다.

● 어떤 장소에 1년을 머물려면 씨를 뿌려라. 10년 있을 거면 나무를 심어라. 100년 있을 거면 덕망에 의지하라.

● 나는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를 죽였다면 나는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연유를 알았기에 나는 참았고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다.

● 치욕의 고통은 스스로 견디는 자가 겪는 통과의례다.

● 죽음을 알면 용기가 솟는다.

● 거짓으로 얻은 명성은 물거품 같다.

● 옛것으로 지금을 비평하지 말라.

●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느냐.

● 천하는 마음을 얻은 자의 몫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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