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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바람둥이 남자의 탄생

중앙일보 2014.11.22 00:04 종합 36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연전에 교육방송에서 마이클 샌델 박사의 강연 시리즈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날 주제는 ‘성공한 사람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는가’였다. 성공한 개인은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과, 성공은 오직 개인적 노력의 결과이므로 사회에 갚아야 하는 빚은 없다는 주장을 놓고 토론했다.



 강연 중 샌델 박사가 학생들에게 형제 중 첫째 아이인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강당에 앉은 학생의 80퍼센트 이상이 손을 들었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심리학의 가족 이론이 현실에서 확연히 보였다는 것과, 샌델 박사가 그것을 검증한다는 점이었다. “첫째 아이는 가족의 페르소나 역할을 한다. 부모의 기대와 소망, 가족 이상을 온몸에 떠안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샌델 박사는 학생들에게 첫째 아이로 태어나기 위해 본인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물었다.



 이른바 바람둥이 남자는 어떤 여자에게 매혹적으로 보인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를 능숙하게 다루기 때문에 그와의 연애는 생의 절정 경험을 선사한다. 절벽이 준비된 경험이지만. 그런 관계 끝에서 고통 받는 후배 여성에게 가끔 말해준 적이 있다. “바람둥이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야.” 그들은 유아기에 양육자와 안정적 애착 관계를 맺지 못한 이들이다. 성장기에 예상치 못한 이별을 경험한 후 친밀한 상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의식에 간직하게 된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상대가 떠날까봐 두려워 먼저 등을 돌린다. 상실 경험이 없더라도 사랑과 분노를 번갈아 내미는 양육자에게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사랑할 때 느끼는 불안과 질투를 처리하기 어려워진다. 내면의 부정적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해 연인의 결점을 찾아내고 실망감을 느끼며 돌아선다.



 위와 같은 조건이 없어도 바람둥이는 태어난다. 가족 이론에서 첫째 아이가 가족의 페르소나를 담당한다면 둘째 아이는 가족의 무의식을 떠맡는다. 둘째는 한 가정이 사회적 얼굴 밑에 숨겨둔 반대편 감정과 욕구를 떠안은 채 그것을 행동화한다. 둘째 아이가 유난스럽다는 통념에는 그런 배경이 있는 셈이다. 특히 엄마가 무의식에 억압해둔 성적 욕망은 자연스럽게 둘째 아들에게 흘러 들어간다. 여성에게 은장도를 강요하던 시대에 세기적 난봉꾼이 많았던 이유가 거기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바람둥이 남자는 상대를 아프게 하기 전 자신이 먼저 내면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 때문에.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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