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의 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4.11.22 00:04 종합 36면 지면보기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연애는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다. 사회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자연에 물어보라. 자연은 그 미(美)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품어주듯 연애하는 사람을 품어줄 것이다. 이것이 근대를 살아가는 그의 철학이었기에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듯이 연애를 위해서도 그의 존재를 걸고 싸웠다.”



 토요일 아침부터 무슨 이상한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 퀴즈를 내려고 예문을 만들어 본 것인데 서툰 작문이라 잘 읽혔는지 모르겠다. 퀴즈는 예문에 나온 한자어 명사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모두 19세기 말 이후 일본어에서 온 단어들이라는 것이 답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 예문은 너무 잘 읽히면 오히려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퀴즈의 답이 사실임을 확인하려면 최근에 나온 이한섭 교수의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저자의 수십 년에 걸친 열망과 노력의 산물인 이 사전은 1880년대 이후 일본어에서 우리말로 들어온 어휘 3600여 단어를 담고 있는데, 조금만 들춰봐도 누구나 놀랄 것이고 언어 순결주의자라면 실어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내 것처럼 사용하는 수많은 한자어들이 일본어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글도 예문만이 아니라 그 뒤에 쓴 부분, 그리고 지금부터 이어질 부분도 일본어에서 온 말들의 지배를 피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어휘들이 근대 문물과 함께 들어와 우리 삶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어휘들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여간해선 그 어휘들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저자도 그런 어휘들이 지금은 우리말에 녹아 들어 있기 때문에 이제 외래어의 일부로 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조심스러운 현실론 같지만 다르게 보면 엄청난 요구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어휘들은 서양 출신 외래어와는 달리 한자라는 껍질에 덮여 있어 특별한 노력 없이는 외래어라고 인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사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거꾸로 이런 어휘들이 외래어임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 말들이 우리 현실이나 역사와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점을 늘 의식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얼마든지 긍정적인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또 이렇게 어긋남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 외래어나 번역어, 나아가서는 번역 전체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사실 위의 퀴즈의 답은 아직 반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나머지 반은 예문에 나온 한자어 명사들이 일본어에서도 실제로 외래어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자를 이용해 서양 어휘를 번역한 단어들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는 영어로 하자면 society를 번역한 말로서 일본에서는 대체로 1870년대 후반에 정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20년 뒤인 189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일본과 우리의 차이라면 일본은 자기 나라 현실에 없는 society라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 교제 등 다양한 말을 백여 년간 실험해보다가 사회라는 번역어를 얻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고투 과정 없이 일본에서 그 말을 직수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라고 공짜일 리는 없고, 한자라는 공통 도구의 편리함은 외려 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빈 곳에 대한 자의식 없이 들여와 놓고 실제로 감당해내지 못하는 말에 부대끼고 허방을 짚은 경험이 실제로 얼마나 많았을까.



 야나부 아키라의 『번역어의 성립』은 일본에서 중요한 서양어를 번역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예문은 이 책에서 다룬 단어들을 이용했다). 실은 이 책에서 어떤 이들은 가슴에 품고 죽기도 했을 말들이 일본의 번역어를 수입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 책의 왼쪽에 서양 어휘의 역사를 다룬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를 놓고 오른쪽에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을 놓으면 뭔가 흐름이 잡히는 느낌도 든다. 가령 70년대의 어느 날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 시내 한복판에 크게 내걸린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구호를 보고 느낀 공허와 부조화도 그 흐름 속에서 조금은 해명이 되지 않을까.



정영목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