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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삼시세끼’에 빠지다

중앙일보 2014.11.22 00:02 종합 39면 지면보기
참 희한한 프로그램이다. 이렇게도 프로그램이 되는구나 싶다. 출연자는 달랑 둘. 인적이 드문 강원도 정선 산골 마을에서 자급자족을 한다. 하루 세끼 밥 차려 먹는 것이 프로그램의 전부다. 물론 외부 게스트가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들이 와서 하는 일도 같이 밥 차려 먹다 가는 것이다. 밥상도 화려할 리 없다.



 tvN의 예능 ‘삼시세끼’(나영석 연출) 얘기다. 할아버지 연예인들의 해외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짐꾼’ 역할을 했던 탤런트 이서진과 아이돌 2PM 멤버 택연이 주인공이다. 하루 종일 뭐 먹을까 궁리하고, 먹거리를 위해 농사짓고, 밥해 먹는 게 일과다. 물론 조금도 게으를 새가 없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금세 점심때가 찾아온다. 워낙 낯선 컨셉트의 프로라 방영 초 이서진은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분명히 망한다”며 대놓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률은 7%까지 올랐다. 유료방송으로는 대박이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데도 물리지 않고, 어느덧 프로그램 속 단순한 삶을 갈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TV도 없고, SNS나 인터넷도 없고, 회사나 도시의 번잡함도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일하는 단순한 삶. 그렇게 삶의 속도를 늦추다 보니 평소에는 눈에 안 들어오던 것들이 들어온다. 화제가 됐던 5회 빗소리 장면이 대표적이다. 카메라가 비 오는 장독대, 비 오는 절구통, 비 오는 처마 밑을 돌아가며 비췄다. 빗물이 떨어져 일으키는 모양새며 그 소리가 제각각이다. 한참 동안 TV에 빗소리만 들렸다. 환한 TV 조명을 다 끄고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화면 가득 담기도 했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 온 나의 은퇴 후 첫 번째 계획은 ‘가사노동을 열심히’다. 일하는 여성으로 사느라 남의 손을 빌리거나 대충 넘겨왔던 집안일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흔히 별것 아니라 치부되는 일이지만 사실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이다.



 ‘삼시세끼’는 앞으로만 내달리던 우리에게 잠깐 서서 쉬어가라고 말하는 프로다. 땀 흘려 지은 밥을 누군가와 나누는 소박한 식탁, 그것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말해주기도 한다. 물론 텃밭을 일구는 진짜 노동의 어려움, 이런 슬로 라이프가 어느 정도 여유 있어야 가능한 호사라는 점들을 생략하고 있지만, 시청자가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꽃보다 할배’에 이어 별것 아닌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연출자의 재능이 빛난다. 오늘 당신의 삼시세끼는 어떠셨는가?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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