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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9> 기내식의 세계

중앙일보 2014.11.21 00:06 Week& 5면 지면보기
여행 자체보다 기내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기내식 먹는 재미에 여행 다닌다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기내식이 넌더리날 때도 있다. 남미·아프리카 등으로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그렇다.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 서너 번 기내식을 먹으면 사육 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행을 부추기기도, 괴롭게도 하는 기내식.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어린이용 돈까스·피자, 저지방식·당뇨식도 서비스

기내식 원가는 항공사의 일급비밀이다. 장거리 비행의 저녁식사 기준으로 대략 일반석이 2만원, 비즈니스클래스는 6만원, 퍼스트클래스는 8만원 정도로 추정한다. 좌석 등급에 따라 기내식도 차이가 난다. 일반석에서는 닭고기·소고기에 밥이나 면을 곁들이지만, 비즈니스 이상 좌석에서는 세 개 코스 이상의 정식이 나온다. 세계 3대 진미라는 푸아그라·캐비아·송로버섯도 상에 오른다. 와인도 차이가 크다. 일반석에서는 주로 칠레·호주의 중저가 와인을, 고급 좌석에서는 프랑스 보르도산 등의 고가 와인을 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고급 좌석 승객에게 ‘끓인’ 라면도 준다. 정확히 말하면, 기내에서 불을 쓸 수 없으므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힌 뒤 사기 그릇에 담아준다. 몇 해 전, 대기업 임원이 맛이 없다며 소동을 피웠던 그 라면이다.



기내식에도 한류 바람이 거세다. 대한항공이 1997년 최초로 비빔밥을 기내식으로 선보인 이후 한국 취항 항공편에서 비빔밥은 최고 인기 메뉴다. 이제는 10여 개 외국계 항공사도 한국 출발편에서 비빔밥은 물론이고 고추장과 김치도 주고 있다.



김치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 대한항공은 취항 이래로 김치를 기내에 들인 적이 없다. 냄새가 비행기에 밸까봐서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엔 김치는 물론이고 김치찌개도 있다. 최신 항공기는 통풍이 잘 되고 외국 승객도 큰 거부감이 없다는 입장이다.



기내식의 열량은 600~700㎉ 수준이다. 양이 적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내식은 평등하다. 모든 사람에게 한 그릇만 준다. 곱빼기도 없다. 승객이 많지 않을 경우, 승무원에게 부탁하면 남는 기내식을 더 먹을 수도 있다.



기내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는 자리는 없을까. 정답은 ‘명당은 없다’이다. 주방이나 비상구 옆자리라고 늘 먼저 주는 건 아니다. 뒷자리부터 줄 때도 있다. 두 끼 이상 먹는 장거리 비행편에서는 공평하게 순서를 섞기도 한다.



최근에는 특별 기내식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종교·건강·연령 등을 이유로 음식을 가려 먹는 승객을 위한 서비스다. 가장 주문량이 많은 건 어린이 기내식이다. 햄버거·돈까스·피자 등이 나온다. 종교식은 이슬람교·힌두교·유대교식 등이 있다. 건강식은 더 다양하다. 저지방식·저열량식·저염식·당뇨식·글루텐 제한식 등 10가지가 넘는다. 생일·결혼 등 특별한 날을 맞은 승객을 위해 케이크를 주는 항공사도 있다. 특별 기내식은 출발 24시간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저가항공사는 기내식을 유료화하는 추세다. 외국계 저비용항공사는 물 한 잔도 공짜로 주지 않는다. 고속버스나 기차처럼 좌석만 제공한다. 기내식 가격은 썩 저렴하지 않다. 제주항공의 경우, 컵라면이 3000원, 비빔밥이 5000원이다. 이마저 아깝다면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싸가서 비행기 안에서 먹으면 된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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