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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야당의 꿈을 보고 싶다

중앙일보 2014.11.21 00:03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대기자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18일 관훈클럽 토론회를 지켜본 사람들의 평가는 후했다. “이렇게 못생긴 탤런트도 있나.” 그는 여유도 보였다. 한 패널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니까 마구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해버리니까 더 추궁할 수가 없었다.”



 바둑은 옆에서 관전하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인다. 직접 두는 사람은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비대위원장을 관전자라면 의아할 수도 있다. 새정치연합도 문 위원장 취임 이후 정상 궤도를 찾았다. 지지율도 올랐다. 그러나 그는 내년 2월 당 대표 경합에 나서지 않는다. 더군다나 대권에 뜻이 없다. 대권을 노리는 사람은 생각이 많다.



 그러니 관전자가 당을 관리하는 데 적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당을 맡겨야 할지는 당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문제는 대통령직이다. 당권과 연계해 대권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러면 달라진다. 대통령 후보 문제라면 당내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새정치연합은 비상 상태다. 비상대책위원장이 끌고 가고 있다.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절반이다. 지지자들은 세월호 참사 한 가지만으로도 정국을 장악했어야 한다고 개탄한다. 무엇이 잘못됐나. 일부에서 얘기하듯 전투적으로 나서지 않아 그런가. 문 위원장이 취임한 뒤 국회 활동에 전념하면서 지지율이 오히려 오르고 있다. 그걸 보면 투쟁 강도가 약해 그런 것도 아니다.



 정부 견제는 야당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상대를 공격해 챙기는 반사이익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방안을 비판하려면 자기 의견도 내놔야 한다. 더욱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정당은 미래권력을 자임하는 집단이다. 과거를 이야기하고, 현재의 다른 정당을 비판하는 것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만들어야 한다. 그 꿈에 투표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를 기득권으로 즐기고 있다. 새정치연합 당사에는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집권에 성공한 분들이다. 야당사에 큰 산맥이다. 존경하고 모시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 다음이 없다. 그분들의 유령으로 장사만 할 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 적 ‘난닝구-빽바지’인가. 그런데 아직도 대표 경선이 ‘DJ-노무현의 대리전’으로 희화화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총선 공천을 염두에 둔 지분 챙기기라고 의심해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집권하려면 전략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 그래도 정치공학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현역 정치인을 상처 입지 않게 숨겨놔야 한다는 말은 엉뚱하다. 정치 현장을 초월한 신비주의로 포장하겠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럴 생각일까. 책임 있는 일을 하고 언론에 노출될수록 지지율이 떨어질 사람이라면 애초에 걸러내는 게 옳다. 경험을 쌓고, 정책을 가다듬고, 유권자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는 건 정치인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평소 정책과 노선을 만들 때 숨어 있다가 선거에는 무얼 들고 나갈 건가. 더구나 새정치연합 사정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실세(實勢)들이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DJ가 당선될 때 구호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 처음 출마해 97년에 당선됐으니 무려 26년 동안 ‘후보’로 불렸다. 그 긴 시간 덕분에 ‘준비된 후보’가 된 건 아니다. 첫 출마 때부터 연속적인 정책 공세로 표심을 흔들었다. 당선 되는 날까지 한 가지 정책을 발표하기 위해 몇 달씩 의견을 듣고 다듬었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깜짝 후보’에 가깝다. 순회경선 과정에서 급부상했다. 하지만 그 역시 후보가 되기 전 자기 길을 꿋꿋이 걸었다. DJ가 함구령을 내려도 자기 할 말을 했다. DJ 그늘에 안주하지 않았다.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를 던져야 만들어진다. 더구나 대통령직은 누구의 후광으로, 누구를 흉내 내서 될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아버지의 후광 덕을 톡톡히 본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상당 기간 자기 정치를 보여주고 일어섰다. 김영삼·김대중·이철승의 ‘40대 기수론’이 바람을 일으킨 것은 누구의 ‘아바타’여서가 아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 자기 자신의 비전을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에는 과거만 보인다. 아직도 과거의 유령을 중심으로 편을 가른다. 뜻이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정권은 요행수로 어물쩍 넘어오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깃발을 들 때도 됐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길을 가는 ‘바보’들이 보고 싶다. 10년이나 야당으로 지냈으면 이제 새로운 꿈을 꿀 때도 되지 않았나.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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