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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마지막 사자'를 만나다

중앙일보 2014.11.18 05:00



기타리스트 겸 보컬 엘리아데스 오초아 인터뷰













쿠바에서 시간은 느긋하게 흘러간다. 세상 밖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지만,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아바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아바나 비에하(Havana Vieja). Vieja는 낡고 오래됐다는 의미의 스페인어다. 아바나 구 시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스페인 식민 시대의 건물과 골목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색창연한 건물 중에는 페인트를 칠하진 않은 게 더 많다. 페인트는 대개 빛이 바래 파스텔톤으로 변했고 군데군데 벗겨져나갔다. 낡은 것은 추해지기 십상이지만, 아바나 비에하에서는 무너진 담장과 부스러진 벽돌, 빛바랜 페인트 색마저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이곳은 UN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은 커다란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쿠바인들의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쿠바 아바나는 클래식카가 흘러 넘친다. 신사동 가로수길 몇몇 카페에서 전시해놓은 올드카다. 클래식카를 개조한 택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혁명 이전 아바나가 미국의 거대한 별장이던 시절,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채 남겨 진 유물이다. 그 차를 고치고 고쳐가며 지금껏 쓰고 있다. 낡았지만 엔진소리가 우렁찬 클래식카는 지금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밴드이자 앨범과 영화의 이름이기도 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도 아바나 비에하, 클래식카와 같은 아우라를 뽐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6년 쿠바의 노장 뮤지션이 모여 만든 앨범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뒀다. 쿠바 혁명 이전 전성기를 누렸던 1940년대와 50년대의 사교 클럽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내고 모아서 만들어낸 음반이다. 1999년에는 앨범 제작 과정이 영화로 만들어져 또 한번 화제를 낳았다.





낮엔 이발사로, 밤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꼼파이 세군도, 쿠바의 3대 피아니스타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10년 넘게 피아노 없이 살았던 루벤 곤살레스, 구두닦이로 살았던 이브라임 페레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원년 주역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 여전히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르는 멤버가 있다. 밴드의 막내였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엘리아데스 오초아(68)다. 지난 5일 아바나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엘리아데스 오초아를 만났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앨범 중에서 한국 팬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던 찬찬(Chan Chan)을 기타로 연주하며 불렀던 주인공이다.

밴드가 결성된 1996년 50세였던 그는 68세가 됐다. 주름은 한층 짙어지고 머리는 백발이 됐지만 카우보이 모자만큼은 변함이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맥주를 시킨 뒤 직접 준비해 온 걸쭉한 토마토 주스를 섞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의사가 럼은 나의 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적을 죽였다. 맥주는 아직까지 괜찮다”고 말했다. 팔팔하고 혈기가 넘친다.





떠나간 동료들의 이름을 거론하자, 그는 살아있는 동료들의 이름을 꼽았다.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노래를 부르고, 드럼을 치는 아말리도 아직 건재하다”며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는 모두 각자의 밴드를 지키며 활동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6월에는 새 앨범 'El Eliades Que Soy'(나는 엘리아데스다)를 냈다. 그는 “새앨범이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고 자랑했다. 내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그래미상 시상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세 번째이며 이번에 두 번째 수상을 노리고 있다.



-'나는 엘리아데스'라는 제목이 재밌다.

"1978년의 음악이다. 그때 난 파트리아 4인조(Cuarteto Patria)의 일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40년 전의 음악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했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와 쿠바 전통 타악기로 이뤄진 밴드다. 원래 쿠바 음악과 쿠바 재즈는 그런 형식으로 출발했다. 피아노도 없고, 색소폰, 트럼펫도 없다. 그런 70년대 음악을 다시 재현했다. 쿠바의 음악은 손(Son)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룸바·팀바·살사·볼레로 등 모든 쿠바 음악의 어머니가 바로 손이다. 내가 예전부터 해왔던 음악도 손이고,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변한 게 없다."

낡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예전의 음악에서, 바로 그 자신 엘리아데스의 정체성이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파트리아(Patria)는 조국이라는 뜻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를 담은 명칭이지만 1959년 쿠바 혁명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1939년 결성돼 세대를 이어 온 유서깊은 밴드다.



-쿠바 음악을 설명한다면.

"스페인과 미국, 아프리카의 음악이 모두 섞인 게 쿠바의 음악이다. 쿠바 음악은 맨 처음 시작부터 퓨전이었고 믹싱이었다. 한국에도 비빔밥이 있지 않나.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비빔밥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이 왜 쿠바의 음악을 좋아하나.

"쿠바 음악에는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든 쿠바의 음악이 들어가면 없어지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남는다."



-어떤 내용의 노래가 앨범에 담겨있나.

"기본적으로 춤을 추기 좋은 음악이다. 내용은 다양하다. 사랑하는 로맨틱한 내용, 사랑한 뒤 이별하는 이야기도 있고, 코미디도 있다."



그의 별명은 '산티아고의 사자'다.

그는 “멕시코에서 제작한 앨범의 타이틀 이름이었다. 난 산티아고 인근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기도, TV도 없던 밀림에서 자라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는 "우리 집에서는 바나나, 감자, 옥수수 등을 키웠다. 집에 기타가 있었고, 늘 그것을 가지고 놀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기타를 잘 쳤다. 기타를 치면서 노는 걸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내가 있는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명랑하게 말했지만 그는 키가 기타 정도로 자란 열 두 살 무렵부터 사창가를 돌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어 생활비에 보탰다. 그는 “정규 음악은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거리에서 음악을 느끼고 배우며 그는 쿠바 음악을 대표하는 ‘사자’로 성장해나갔다.

한국에 대해 묻자 그는 대뜸 “대단한 나라”라며 “요즘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자주 나온다. 재밌게 춤을 추는 청년도 안다”고 말했다. ‘싸이’를 말하는 거냐고 물으니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 그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공연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 가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연주를 부탁했다. 굵은 반지를 세 개나 낀 그의 솥뚜껑만한 손이 기타 위에서 춤을 쳤다. 그는 쿠바 전통 기타인 트레스(Tres)와 기타를 혼합해 현이 8줄인 남미식 기타를 사용한다. 그는 "예전부터 이 기타만 썼다. 쿠바 음악의 느낌을 더 섬세하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언제까지 음악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대꾸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손이 움직일 때까지.”



아바나의 건물과 클래식카처럼, 그는 낡았지만 우렁차고 씩씩하다.









아바나(쿠바)=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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