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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얻으려 … 무상보육 과속했다

중앙일보 2014.11.18 01:10 종합 1면 지면보기
“부족한 예산을 어려운 국민을 위해 쓰는 선별적 복지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주택 등 마구잡이식으로 터져나오는 보편적 무상복지는 국민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슈추적] 무상 논란 뿌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얘기다. 쉽게 말해 나라 곳간이 비었으니 공짜 타령은 그만하자는 거다.



그런데 3년 전 이맘때, 180도 다른 얘기가 현재의 여권에서 나왔다. 2012년 4월 총선을 코앞에 둔 2011년 11월, 당시 한나라당은 “2013년엔 0세, 2014년엔 0~4세 무상보육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5월 만 5세 보육료를 지원한다는 정부의 발표, 8월 황우여(현 교육부 장관) 원내대표의 “세계 최소 출생률이 이어진다면 국가 존립의 문제다. 소득 상위 30%를 포함해 영·유아 교육·보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에 이은 3탄이었다. 무상급식 논란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진퇴 논란이 절정에 달하던 시점이다.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돈이 없어서다. 그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



▶임채민 복지부 장관(11월 1일, 전체회의)=“소득 하위 70%에 주던 것을 전면 확대한다는 방향은 공감한다. 그런데 재정형편을 고려해 연차적으로 확대하겠다.”



▶손건익 복지부 차관(2일, 예산소위)=“이미 어린이 돌봄 서비스 등 증액이 2조원 가까이 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낫다.”



정부의 반대로 상임위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예산결산특위로 넘겼다. 예결위 여야 간사는 12월 30일 “0~2세 보육료 전액을 국가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회의에선 야당 간사 강기정 의원이 “보육료 지원사업에 3697억원을 추가 계상한다”고 보고한 뒤 그대로 처리됐다. 이견은 없었고, 애초 만 5세 아동에게만 적용키로 했던 무상보육은 확대 실시됐다. 당시 예결위원이었던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예산이 과다하니 반일제 지원 정도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런데 여야 지도부가 무상보육 확대 도입으로 합의해 예결위로 내려보냈다. 여나 야나 선거를 앞둔 때였다. 정치권에선 다 주기로 했다. 많이 주자는 걸 적게 주자고 주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표의 논리가 합리를 눌렀다는 거다. 당시 이미 선거 시계는 째깍거리고 있었다. 더 급한 건 여권이었다. 무상급식 논란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한 두 달 뒤,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내건 박원순 후보가 이겼다.



여권 입장에선 무상급식에 맞설 대표 상품이 필요했다. 이듬해 4·11총선을 2주가량 앞둔 3월 29일 보육료의 일부를 분담하게 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야당 소속으로 시·도지사협의회장인 박준영 전남지사와 송영길 인천시장의 목소리가 컸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지방비 부담 중 3177억원을 국비에서 지원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대선도 한몫했다. 0~5세 무상보육은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공통으로 내건 공약이었다. ‘영·유아 보육·육아의 완전 국가책임제’를 공약한 박 대통령의 당선은 무상보육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3월 정부는 누리과정의 재원을 2015년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하도록 시행령을 고쳤다. 내년도 예산안을 짜기 시작할 무렵인 올해 10월 전국의 시·도 교육청은 재원이 없다며 누리과정 관련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나섰다. 그 결과가 2014년 11월 현재 국회의 모습이다. 여야는 이날도 누리과정의 재원 부담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지도부의 정치적 거래에 맡겼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박하다. 육아정책연구소 서문희 박사는 “정치에 부정적인 젊은 엄마들에게 가장 효과 있는 정책이었던 까닭에 나라 재정 생각 없이 성급하게 도입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윤희숙 연구위원도 “별 생각 없이 너무 빨리, 너무 한꺼번에 막 늘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 고 말했다.



권호·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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