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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보면 답답한 마음 풀리고 짜릿” … 강남 대모산 6차례 불낸 50대 주부

중앙일보 2014.11.18 00:51 종합 8면 지면보기



남편과 불화로 8년 전부터 조울증
“스트레스 해소 경험에 방화 중독”

가정주부 정모(53)씨는 남편과의 불화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스트레스는 8년 전부터 조울증으로 이어졌다. 증세는 낙엽이 지는 가을이 되면 더 심해졌다. 정씨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서울 강남구 대모산을 자주 찾았다. 정씨는 소나무에 엉겨 붙은 송진을 보자 3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소나무에 붙은 불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답답한 가슴이 풀렸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정씨는 지난 10월 말부터 배낭에 라이터와 신문지를 넣고 산을 찾았다.



 정씨는 소나무 틈에 신문지를 말아 넣고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모아 불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정씨의 대모산 방문은 점점 잦아졌다. 11월 9일에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산에 올라 불을 냈다. 대모산에서 화재가 계속되자 수서경찰서는 방화로 의심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발견된 신문지에서 여성의 DNA가 확인되자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화재시간 전후로 산을 찾은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결국 정씨는 수사가 시작된 지 5일 만에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9일까지 6차례에 걸쳐 30여 곳에 불을 붙여 임야 1300㎡와 나무 250여 그루를 태운 혐의(산림보호법 위반)다. 경찰 조사에서 정씨는 “나무에 불을 붙여 불꽃을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짜릿해졌다”고 말했다. 수서경찰서 한원횡 형사과장은 “정씨의 범행 주기가 빨라지고 피해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대모산 인근에 판자촌인 구룡마을이 있어 자칫 큰 인명 피해를 낼 뻔했다”고 말했다.





 정씨처럼 두 건 이상 방화를 한 연쇄방화범 중에는 일상생활에서 쌓인 불만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방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울산 봉대산 일대에서 90여 차례 방화를 하다 붙잡힌 ‘봉대산 불다람쥐’ 안모(55)씨도 집안 문제로 화가 나 처음 방화를 시작했다 쾌감을 느껴 방화를 계속했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는 “연쇄방화범은 우연히 불을 통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경험한 후 방화에 중독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연쇄방화범의 특징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 펴낸 ‘연쇄방화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연구원은 2001~2011년 사이에 방화를 저지른 연쇄방화범 148명을 분석했다. 개인적 원한이나 사회적 열등감 등 분노를 풀기 위해 불을 낸 경우가 10건 중 6건꼴이었다. 정신질환(20.3%)이나 욕구 충족(10.5%)을 위해 방화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형민 부연구위원은 “방화범들은 스트레스를 사회적 관계에서 풀지 못하고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건물이나 사물 등에 간접적으로 해소한다”며 “스트레스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사회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만큼 범사회적인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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