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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최고존엄만은” 국제 ‘인권 압박’에 비상 걸린 북한

중앙일보 2014.11.18 00:40 종합 14면 지면보기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비판이 전에 없이 강경합니다. 9월 69차 유엔총회에서 이슈로 제기돼 후끈 달아올랐는데요. 외교소식통은 17일 “아프리카 등의 인권문제를 다룰 땐 유엔 소위원회에 서기관급 실무자가 오지만 북한 인권이 테이블에 오르면 각국 대사들이 몰려든다”고 귀띔했습니다. 지난 주 실태조사차 한국에 온 마루주키 다루스만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광범위한 북한 내 인권침해에 사실상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꼭 집어 얘기하진 않았지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겨냥한 겁니다.


EU 등 전례없이 강경하게 비판
북 “ICC 제소만 빼달라” 총력전
유엔, 오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평양의 움직임이 부산합니다. 최근 북한 외무성의 이흥식 국제기구국장을 다루스만 보고관의 전담대사로 임명했습니다. 9월에는 강석주 부총리를 EU(유럽연합)에 파견했고, 이수용 외무상을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조선인권연구협회란 기구를 내세워 ‘인권보고서’를 대외에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에겐 인권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핵·미사일에 이어 위조달러(슈퍼노트)와 마약·가짜담배가 골치거리로 등장한 2000년대 중반 “다음 차례는 북한 인권일 것”이란 예상이 한·미 당국자들 의 공통 예상이었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게죠.



 북한 인권문제가 몰고온 파장은 만만치 않습니다.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이틀 뒤 아프리카 보츠와나는 북한과의 단교를 선언했습니다. 3월 25차 유엔인권이사회는 COI보고서를 추인했고, 북한 인권문제를 다룰 현장사무소(FBS)를 한국에 설치키로 했습니다. 북한도 분위기에 밀리는 형국입니다. 줄기차게 거부해온 다루스만 보고관의 방북 조사를 허용하겠다고 태도를 바꾼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하는 구절만 빼달라는 조건을 내세웁니다. ‘최고존엄’만은 상처받지않게 하겠다는 절박한 모습인데요.



 수미 테리 미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인권 이슈가 북한을 움직이는 놀라운 레버리지(지렛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마치 2005년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을 포함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뒤 북한 정권이 보인 반발을 떠오르게 하는데요. 당시 미 당국자는 “평양의 팔을 살짝 비틀려했는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놀랐다. BDA가 북한의 급소란 걸 알아차리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을 취재하다보면 우리의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발행하는 권위있는 ‘인권백서’조차 없어 어느 걸 참고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북한과 대화 분위기를 만들겠다며 인권문제에 침묵한 결과입니다. 중국 내 탈북자의 북송을 저지해야 할 외교당국이 늘 뒷북을 치는 것도 눈치보기 정책의 결과입니다.



 미국도 10년 전 북한인권법을 만들었는데, 정작 대한민국 국회는 2005년 8월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인권법안을 9년째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 시민단체는 지난달 14일부터 매주 화요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지만 의원들은 꿈쩍 않습니다.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상임대표는 “여건 성숙을 운운하며 인권법에 미적거린다면 훗날 북한 동포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2015년은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영국 대헌장)’ 발표 800주년입니다.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그 중심에 북한 인권문제가 자리할 겁니다. 유일지배· 수령독재란 허상에 갇혀 ‘최고존엄’만 챙기는 북한 당국이 2400만 주민의 ‘보편적 존엄성’에 눈뜨게 될 날은 언제 올까요.



 ◆‘북 최고위층 책임’ 결의안 채택 유력=북한 내에서 반인도범죄를 자행한 법적 책임이 ‘북한 최고위층 지도부’에게 있음을 명시한 최초의 유엔총회 북한 인권 결의안이 18일(현지시간)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표결에 부쳐집니다. 우리 정부는 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는군요.투표가 진행될 유엔총회 3위원회에는 EU가 제안한 결의안과 쿠바가 제안한 수정안 두 개가 상정돼 있습니다. 표결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참여할 수 있으며, 찬성이 한 표라도 많으면 가결되는 방식입니다. 한국 등 50여개국이 공동제안자로 참여한 EU 대북결의안은 ▶북한 내에서 최고위층이 수립한 정책에 의해 반인도범죄가 자행됐음을 인정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독려하고 ▶반인도범죄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제재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가까운 쿠바는 EU 결의안에서 골자 조항들을 모두 삭제한 수정안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그간 추이를 보면 EU 결의안이 압도적 표 차로 통과될 것같다”며 “쿠바 수정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10%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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