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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엔지니어들 ⑧ CCD 대량생산법 개발 질 아멜리오(1943~ )

중앙일보 2014.11.18 00:33 종합 18면 지면보기
1969년 미국 벨연구소의 윌러드 보일과 조지 스미스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이끄는 팀이 새 반도체 소자인 전하결합소자(CCD·Charge-Coupled Device)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천체망원경서 차 블랙박스까지 … ‘디지털 필름’ 대중화 시대 열어

 종래의 집적회로(IC) 칩은 일반 전기회로와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흐르듯 회로에 전류가 흘렀다. ‘파이프’만 이전 진공관·구리선에서 반도체로 바뀌었을 뿐이다. 반면에 CCD는 파이프가 아니라 ‘물잔’으로 물을 주고받았다. 특정 구역에 전자를 모아 두었다가 한번에 다음 구역으로 통째 넘겨주는 식이다.



 보일과 스미스는 CCD를 메모리 소자로 쓰려고 했다. ‘물잔’에 전자가 차 있으면 1, 없으면 0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CCD에 빛을 쪼이면 ‘물잔’에 전자를 채울 수 있어 필름 대용으로 쓰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문제는 ‘물잔’과 그 ‘물잔’을 제어하는 회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였다.



 개발팀 막내였던 질 아멜리오(사진)는 ‘물잔’ 위에 회로를 하나씩 새기는 방식으로는 실용화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71년 페어차일드반도체회사로 이직한 그는 3단계 적층(積層)식 CCD 제조법을 개발했다. 제어회로를 먼저 일부만 만든 뒤 회로와 회로 사이 골짜기 표면에 고전압을 걸어 ‘물잔’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회로를 덮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물잔’과 회로의 위치가 자동적으로 맞춰져 손쉽게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74년 페어차일드사는 500화소 일렬CCD와 일렬CCD를 이어붙인 1만(100X100) 화소 평면CCD를 시장에 내놨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군부와 천문학계가 열광했다. 76년 말 64만 화소 CCD를 채용한 KH-11 정찰위성이 발사됐다. 덕분에 미국은 소련(현 러시아)의 속살을 거의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90년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에도 같은 화소의 CCD가 쓰였다.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이 쏟아졌고 그 덕에 보일과 스미스는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초기 미국산 CCD는 너무 고품질이라 민수용으로 쓰긴 힘들었다. 대신 일본이 CCD 대중화와 컬러화를 이끌었다. 소니는 2000화소 CCD로 시작해 79년 12만 화소 CCD를 만들었다. 85년 내놓은 32만 화소 CCD 캠코더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CCD 개량 경쟁이 불붙었는데 모두 아멜리오식 공정을 사용했다.



 CCD 혁명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부터 바코드 리더, 자동차 블랙박스까지 이미지를 전자적으로 촬영·저장·증폭·재현하는 모든 장비에 CCD가 쓰이고 있다. 덕분에 누구나 언제든 추억을 보존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아멜리오는 훗날 경영자로 변신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지금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는 터를 닦고 ‘쫓겨난’ 노인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가 실용화한 CCD는 잡스가 복귀해 내놓은 아이폰 이상의 충격을 인류에게 선물했다.



이관수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양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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