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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3500명 길러낸 우당 이회영 일가의 혼 … 덕수궁 중명전서 만나다

중앙일보 2014.11.18 00:28 종합 23면 지면보기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사진)이 돌아왔다. 1932년 11월 17일 만주 뤼순 감옥에서 옥사한 지 꼭 82년 만이다. 17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개막한 ‘난잎으로 칼을 얻다-우당 이회영과 6형제’는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에 헌신한 우당 일가를 돌아보는 전시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헤이그 밀사 파견을 기획한 우당의 혁명성을 기리기 위해 바로 을사늑약이 강제된 그날, 그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에서 막을 올렸다.


묵란·벼루 … 아내 회고록 처음 공개

우당 이회영이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친 ‘묵란’. [사진 우당기념관]
 우당 이회영(1867~1932)과 6형제는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50여 명 가족이 전 재산을 처분해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망명했다. 해방 후 5남인 시영(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마지막으로 조국에 돌아왔을 때 살아남은 가족은 20여 명뿐이었다. 목숨·신분·재산·자식을 남김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쳤다.



 우당과 형제들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투사 3500여 명을 길러냈다. 중국에 건너간 뒤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인 우당은 일제에 대한 테러를 펼쳤다.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도 만주 주재 일본군 사령관을 처단하는 작전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전시 제목 ‘난잎으로 칼을 얻다’는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난(蘭)을 치고 그 그림을 팔아 활동을 이어간 우당을 추도하는 뜻을 담았다. 땅을 잃어 뿌리 없는 난초를 그릴지언정 붓을 꺾지 않으니, 500년 묵은 눈물로 먹을 갈아 조선 마지막 붓끝으로 그려 올린 난을 내다 팔아 칼을 얻었다. 예술과 역사적 행동이 일치한 희귀한 장면이다. 전시에는 우당이 난을 칠 때 쓰던 벼루와 묵란(墨蘭) 5점, 우당의 아내 이은숙(1888~1979)의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西間島 始終記)』 육필 원고 등 실물자료 30여 점과 영상물이 나왔다. 최초 공개된 『서간도 시종기』는 국내외에서 벌어진 독립 운동의 주요 흐름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



  전시를 기획한 서해성 전시감독은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 그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02-3676-3333.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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