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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마지막 잎새와 도미타 나오야

중앙일보 2014.11.18 00:08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헌
도쿄 특파원
도쿄의 가로수가 품고 있던 빨간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토해내고 있다. 잎들을 떨어뜨린 나무는 앙상한 두 팔을 벌린 채 바람을 맞는다. 창밖 담쟁이넝쿨을 보며 운명을 직감하던 여류화가 존시. 그가 폐렴에 걸려 병석에 누운 것도 찬바람이 불던 11월 이맘때였다. 오 헨리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무명의 늙은 화가는 한 장 남은 잎새가 떨어지면 죽을 거라고 믿는 존시를 위해 속임수를 쓴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밤, 폭풍우에도 끄떡없을 암녹색 담쟁이 잎을 담벼락에 몰래 그린다.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고 자신은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당신은 자주 거짓말을 하나요?”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며 ‘거짓말과 속임수는 모두 나쁜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조금 자유로워진다. “네”라고 대답하는 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보다 양심적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13~29세 사이 일본과 외국 젊은이들을 상대로 의식조사를 했다. “자주 거짓말을 하나요?”라고 묻자 일본인 28.9%가 “그렇다”고 답했다. 영국 27.6%, 한국 27.2%, 미국 23.3% 순으로 “네”라는 답변이 나왔다. ‘일본인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단순하게 일반화할 순 없다. 사기·횡령·배임과 같은 거짓말 관련 범죄 발생률은 일본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거짓말에 비교적 관용적인 일본인 특성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엔 ‘거짓말도 방편(噓も方便)’이란 말이 있다. 때론 정직보다 하얀 거짓말이 낫다는 얘기다. ‘거짓말에서 나온 진실(噓から出たまこと)’이란 말도 쓴다. 메이지(明治)대학 국제일본학부 스즈키 겐지(鈴木賢志·사회심리) 교수는 ‘주간동양경제(週刊東洋經濟)’에 게재한 글에서 “타인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인이 의견 충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상대 취향이 자신과 달라도 속마음을 감춘 채 ”같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동조성의 압력’이라 지칭했다.



 일본에서 요즘 거짓말 논쟁이 뜨겁다. 인천 아시안게임 때 한국 사진기자 카메라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수영 대표 도미타 나오야가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벌금 100만원을 내고 일본으로 돌아간 지 한 달도 더 지나 뒤늦게 “카메라를 훔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론은 싸늘하다. 인기 개그맨 마쓰모토 히토시(松本人志·51)는 “O, X표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X표를 줄 수밖에 없다”며 거짓말에 무게를 뒀다. 가수 와다 아키코(和田アキ子·64)는 “누명을 쓴 거라면 큰일이지만 아니라면 정신 차리라”고 충고했다.



 인천지법은 도미타에게 “이의가 있으면 정식 재판을 청구하라”며 약식명령 등본을 보낼 계획이다. 떳떳하다면 재판을 통해 밝히면 된다. 본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당당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 혹시 순간을 모면하려는 것이라면 한국은 물론 비교적 거짓말에 관대한 일본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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