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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람이 로봇보다 섹시한 이유

중앙일보 2014.11.18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찾아올 수 있어요?’ 그가 묻는다. 걱정도 팔자다. 내 휴대전화 안에는 주소만 주면 데려다 주는 여자가 산다. 최단 코스로 말이다. 괴산의 한 카페 공연에 급히 오라고 했다. 가보고 싶던 차에 불러준 주소대로 휴대전화에 입력하고, 갓 끓인 커피를 들고 차 시동을 걸었다. 친절한 그녀는 걸리는 시간까지 알려준다. 1시간50분.



 낯선 길로 30분쯤 갔나. 커브를 틀다가 휴대전화가 떨어져 커피 머그잔 속에 퐁당. 차를 세웠다. 휴대전화를 여기저기 눌러봐도 반응이 없다. 새로 만든 길이라서 길 옆엔 아무것도 없다. 40분을 헤매다 알뜰주유소를 찾았다.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를 걸려는 순간. 세상에. 기억나는 번호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기억했던 남편 번호도 010으로 바뀌기 전 번호다. 마음이 급하다. 계속 눌러도 다른 곳이다. 포기하고 괴산 가는 길을 물었다. 일단은 30분 이상 왔던 길로 되돌아가란다. 장소도 모르고 공중전화는 없고. 그중 젤 심각한 건 기억하는 번호가 없다는 거다. 한 시간 이상 찾아 헤매다가 집으로 되돌아왔다.



 정녕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연락처, 스케줄, 계좌번호, 찍은 사진들….



 휴대전화만 안다. 걔가 영영 못 깨어나면 내 인생 끝장이다. 난 그녀의 노예였다.



 원할 때마다 말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문자가, 입을 열어야만 가능한 통화보다 훨씬 좋아지기 시작한 지도 벌써 꽤 오래됐다.



 하루가 다른 디지털 기술. 이제 편리함을 넘어섰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불평 없이 일하는 로봇이 사람 일자리까지 빼앗는다. 스마트 기기라는 것도 편리하지만 의존심만 키운다. 나를 바보 만든 것같이 말이다.



 엊그제. ‘로봇과의 섹스가 지극히 정상적인 시대가 온다’는 글을 봤다. 실물 크기의 그런 인형은 이미 있다. 이제 그 인형이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반응까지 한단다. 조만간, 동반자나 연인으로 로봇을 사는 게 지극히 정상적일 거라고? 그럼 이제 사랑도 로봇과 한다고?



 예전에는 집밥에 대한 최대 찬사가 ‘식당에서 만든 것 같다’였다. 요즘은 식당 음식을 칭찬할 때 ‘집밥 같다’라고 한다. 슬슬 사람 손길이 그리운 게다.



 손뜨개질한 올이 들쭉날쭉한 스웨터. 제각각 모양의 손으로 빚은 떡. 행간에도 의미가 담긴 손글씨. 이런 게 난 좋더라. 들쭉날쭉, 제각각, 삐뚤삐뚤함 너머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24시간 모든 걸 완벽하게 다 해주는 잘생긴 로봇보다 모든 게 삐뚤삐뚤 들쭉날쭉 엉망진창인 못난이 내 남편이 더 좋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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