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영희 칼럼] 독일 통일 25년, 내적 통합은 진행 중

중앙일보 2014.11.18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가던 날이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은 사실상 통일의 날이다. 90년 10월 3일의 통일선포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기온 섭씨 10도. 음산하고 쌀쌀한 날씨인데도 100만 명의 인파가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밟으면서 독일과 유럽과 세계 역사를 다시 쓴 그날의 감동을 되새겼다. 군데군데 설치된 무대에서는 록밴드들이 역사적인 이날을 축하하러 몰려든 독일인들의 흥을 돋웠다. 그들은 무질서하게 춤을 췄다.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브란덴부르크 게이트에서 열린 기념식이었다. 10만 명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외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같은 독일 통일의 유공자들이 단상에 앉았다. 그들은 연설은 하지 않았다. 축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런 행사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정치문화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무대의 중심에 선 사람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그의 지휘로 독일 국립합창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찬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7000개의 벌룬이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최초의 벌룬이 날아오른 오후 7시26분은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열린 시간이다.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벌룬은 장벽의 붕괴와 소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독일 통일이 25년째를 맞았지만 사회적으로는 동서독 통합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겁다.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 문서 관리위원회는 아직도 슈타지의 문서를 일반에 공개해 피해자 구제를 계속한다. 동독 독재청산위원회도 동독 독재정권의 유산을 청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독재청산위원회의 카민스키 위원장과 슈타지 문서관리위원회의 얀 위원장 모두 두 기구의 임무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독일 통일정부는 10만 명의 동독 당·군·비밀경찰·행정부 관리들을 조사해 1737명을 기소했지만 유죄 판결 54%, 그중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7%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연히 독재 피해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건 정의인데 얻은 것은 법치뿐”라는 성명까지 냈다.



 동독인들은 독재에 신음하고 통일 후에는 서독인들과의 각종 격차에 고통받는다. 그들의 평균수입은 서독인들의 85% 정도다. 취업에서도 불이익을 당한다고 느낀다. 16만5000명의 동독 군인 중 통일 독일군에 흡수된 것은 1만1000명에 불과하다. 고급장교들은 대개 두 계급 강등당했다. 동독 파워 엘리트 중 통일 독일 정부에 고용된 행운아들은 예외 없이 엄격한 신상 털기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다.



 여기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이 배울 교훈이 있다. 그것은 통일 후 동서독인들의 화해와 통합이 동독 파워 엘리트 처리의 대전제라는 사실이다. 보복보다는 관용을 통한 화해. 남북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독일처럼 1년의 통일 마무리 기간이 주어졌을 경우 국가와 민족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겁먹은 북한 파워 엘리트들이 통일 저지에 올인할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통일준비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 파워 엘리트 일반을 처리하는 문제의 치밀한 사전 연구다. 통일에 대한 그들의 공포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동방정책의 설계자 에곤 바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내적 통합(Innere Einheit)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독일인들은 25년 전에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지금도 오시(Ossie·동독인)와 베시(Wessie·서독인)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는 내적 통합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구세대가 사라지고 신세대가 나타나면서 통합도 이루어집니다.” 그의 말은 자연의 법칙에 맡길 뿐 인위적인 정책으로는 통합을 완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의 이 말은 우리에게 참고가 안 된다. 독일의 내적 통합은 우리 식으로 민족 동질성 회복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정책은 통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대화를 하고 교류를 넓혀감으로써 서로 한 걸음씩 다가서면서 점진적으로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은 통일의 준비 과정으로서도 필요하고 정치적인 통일 뒤의 사회적·문화적·심리적 통합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한 작업이다. 신뢰 프로세스나 드레스덴 선언이나 아직은 말뿐이다. 실천하는 접촉과 교류가 진정한 통일준비요, 통일 후 남북 내적 통합의 짐을 더는 길일 것이다.



  <베를린에서>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