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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보고도 못 본 체 눈 감는 사회

중앙일보 2014.11.18 00:02 경제 11면 지면보기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지만 영문도 모른 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바위를 뚫는 낙숫물의 심정으로 싸웠으나 어떤 해결책도 안 보이는 상황-.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에서 주인공은 외친다. “그저 얘기를 들어 달란 거다. 모른 채 말고 우리를 좀 봐 달란 거다.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다!”



 이들의 사연을 전할 때 주의해야 할 표현이 있다. “영문도 모른 체”는 “영문도 모른 채”로, “모른 채 말고”는 “모른 체 말고”로 바루어야 의미가 전달된다.



 “영문도 모른 체”의 경우 일이 돌아가는 형편을 모르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므로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란 뜻의 의존명사 ‘채’가 와야 한다. “한동안 모두 고개를 숙인 체로 말이 없었다” “왜 해고돼야 했는지 이유조차 모른 체 쫓기듯 회사를 떠나야 했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처럼 사용해선 안 된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 이유를 모르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고개를 숙인 채로” “이유조차 모른 채”로 표현하는 게 바르다.



 “모른 채 말고”의 경우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듯 행동한다는 것이므로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을 의미하는 의존명사 ‘체’가 와야 한다. ‘척’도 같은 뜻의 의존명사다. “모른 척 말고”와 같이 바꿔 써도 된다.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도 모르는 체를 하며 고개를 돌리더라” “들어도 못 들은 체 귀를 막아선 안 된다”처럼 사용한다. 의존명사는 앞 단어와 띄는 게 원칙이므로 ‘모르는 체’와 같이 쓴다. “잘난 체하다” “아는 체하다”처럼 용언 뒤에서 보조동사로 사용될 때는 ‘체하다’ 꼴로 붙인다.



 ‘채’와 ‘체’의 쓰임이 헷갈릴 때는 ‘체’와 ‘척’이 같은 의미란 것만 기억하면 된다. ‘척’으로 바꿔 말이 되면 ‘체’, 말이 안 되면 ‘채’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쪼그린 채 잠들었다”의 경우 ‘채’를 ‘척’으로 바꾸면 어색하다. “그들을 보고도 못 본 체 지나갔다”의 경우는 ‘체’를 ‘척’으로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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