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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과 불후의 정책

중앙선데이 2014.11.16 03:06 401호 30면 지면보기
요즈음 방송에서는 ‘불후의 명곡’이나 ‘히든 싱어’ 같은 프로그램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70~80년대 노래들을 후배 가수들이 편곡을 가미해 부르거나 일반인이 원조 가수와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진짜 가수를 골라내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런 방송을 보면서 대중가요를 잘 모르는 사람도 20~30년 전 무심하게 들었던 노래들의 멜로디나 가사가 지나간 시대의 우울이나 공허를 얼마나 달래주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동양철학자 김충열 선생은 ‘불후(不朽)’의 의미가 큰 덕을 세우거나(立德), 공적을 세우거나(立功), 학설을 세우는 것(立言)이었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중국 역사상 불후의 업적을 남긴 최초의 인물이 4000여 년 전 요순시대의 임금들이었다고 설명한다(김충열 『중국철학사1』). 그런 ‘불후’의 개념을 대중가요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엄격한 학자들도 있을 것이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온 대중가요의 ‘불후’의 공적도 적지 않다고 느낀다.

비단 대중가요뿐이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해 지난 60여 년간 발전해 오고, 우리가 이만큼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 이면에는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국가안보나, 경제발전이나, 학문과 문화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이 축적된 그 공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월 전쟁기념관이나 국가보훈처 등에서 선정하는 ‘호국의 인물’ 혹은 ‘6·25 전쟁영웅’들의 나라를 위한 헌신은 보다 주목받고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치가와 관료들이 지난 60여 년 동안 국가 발전을 위해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온 ‘불후의 정책’들이나 언론인과 학자들이 학문과 문화 발전을 견인해온 ‘불후의 명저’들을 발굴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만 방송에서 ‘불후의 명곡’들이 누리는 영광에 비해 매월 선정되는 ‘호국의 인물’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소홀해 보인다. 더 나아가 시대를 견인해온 국가 발전정책이나 문화적 업적에 대한 국가적 평가는 매우 미흡하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지난 60여 년 동안 절대 빈곤과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 그리고 민주국가로 발돋움해온 그 업적을 이제는 ‘불후의 정책’으로 정당하게 평가하고, 그를 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계승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필자는 재직하는 대학에 매년 연수받으러 오는 육·해·공군의 고위 장교 및 정부 각 부처의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건국 이후 국가 발전을 견인해온 대표적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오고 있다.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다수는 ▶이승만 정부 시기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선택과 한·미 동맹 체결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과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정책, 그리고 새마을운동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김영삼·김대중 정부의 금융실명제와 민주화, IT산업 기반 육성 등을 평가해야 할 국가 발전의 정책이었다고 꼽았다. 주변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응하여 우리 측의 영공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게 취해졌던 방공식별구역 확대 조치도 최근의 성공적 정책 사례로 언급되었다.

설문 대상자들이 정부와 군에 몸담고 있는 공직자이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평가 노력이 사회 다른 분야에도 확산됐으면 한다. 지금의 우리를 형성해온 ‘불후의 명곡’뿐 아니라 ‘불후의 정책’이나 ‘불후의 명저’들이 무엇이었는지 평가하고, 그 탄생 과정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재평가와 검토 작업이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보다 험난한 경제·외교·안보 관련 시대적 과제들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불후의 정책’을 구상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 주요 연구로 『제3의 일본』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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