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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칼럼] 군 부대서 깨우친 ‘우문현답’

중앙선데이 2014.11.16 03:09 401호 30면 지면보기
“서울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대형 제과점에 남성 화장실이 없어 남성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성평등원)에 이런 제보가 들어왔다. 문제의 매장은 파리크라상. 그것도 구매력 높은 지역에 전략적으로 낸 ‘시그니처점’이었다. 2층까지 이어지는 매장에선 빵은 물론 간단한 식사와 커피도 팔아 늘 손님이 넘친다. 이런 곳에 남성 화장실이 없어 남성 고객들은 매장 뒤편 이촌종합시장까지 걸어가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양성평등원은 국민의 양성평등 의식을 확산시키고 관련 교육을 지원하는 정부 산하기관이다. 남성 화장실을 없앤 업소를 단속할 권한은 없다. 양성평등원의 원장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이른바 ‘낙하산’으로 내려온 김행. 그는 사소하게 보이는 이 문제가 양성평등을 크게 저해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직접 현장을 확인했다.

김 원장은 제보를 받은 이틀 뒤인 일요일 아침, 문제의 파리크라상 매장을 찾아갔다. 듣던 대로 화장실은 2층에 설치된 여성용 한 칸뿐이었다. 그는 종업원에게 남성 화장실이 없는 이유를 물었다. “처음엔 남녀 공용으로 썼는데 여성 고객들이 불편하다고 항의해 여성 전용으로 바꿨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럼 남성은 어떻게 하나”고 따지자 종업원은 “가끔 남성 고객들이 불만을 표시해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한다.

매장 면적을 늘리기 위해 법에 반드시 설치하게 돼 있는 남성 화장실을 없앤 꼼수가 확인됐다. “경영진에게 남성 화장실을 만들라고 얘기해 달라”고 종업원에게 당부하고 매장을 나온 김 원장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 말단 직원 얘기를 듣고 경영진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김 원장은 그 사연을 일간지의 칼럼에 소개했다. ‘남자 화장실이 없다고?’란 제목으로 제과점의 꼼수를 지적했다. 관할 용산구청이 제과점의 불법행위를 적발하지 않은 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나 어린이용 변기가 없는 점도 함께.

이튿날 아침 제과점 간부가 양성평등원으로 달려왔다. 그를 만난 김 원장은 “다른 말은 필요 없고 즉각 적절한 조치를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 간부는 “이미 긴급회의를 열고 문제의 매장에 즉시 남성 화장실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전국의 다른 매장들에 대해서도 남성 화장실 유무를 파악해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원장은 말 나온 김에 기저귀 교환대와 어린이용 변기 설치도 요청해 “전국 모든 매장을 조사해 조치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제보 접수 사흘 만이다.

만약 제보를 듣고도 “우리는 단속 권한이 없으니 구청에 알아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구청이 즉각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제보는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쳤을 것이다.

김 원장이 ‘클린 히트’를 친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는 매일 직원들에게 “민원전화 성의껏 받고 내용을 반드시 보고하라”고 주문한다고 한다. 그의 채근에 민원 다루는 직원 손길이 달라졌다.

양성평등원은 ‘화장실 민원 해결 2탄’을 준비 중이다. 많은 건물주가 남성 화장실 청소를 여성에게 맡겨 이용하는 남성이나 청소하는 여성 모두를 민망하게 만드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어느 군 부대 견학을 갔을 때 이런 구호를 들은 적이 있다. 우문현답! 즉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라 했다. 옳은 말이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 아닌가.

우리 공무원들은 과연 현장에서 답을 구하고 있나. 지금도 여전히 탁상 행정, 칸막이 행정에 머물고 있지는 않나. 그 고질병이 곪다 못해 터진 게 세월호 참사 아니었나. 해양경찰·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 관련 기관들이 현장에서 주저주저하거나, 책임을 넘기는 사이에 고귀한 생명이 사라지지 않았나. 그런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슨 큰일 하겠다는 생각보다 빵집 화장실 하나 제대로 고쳐놓겠다는 현장주의가 필요하다.


강찬호 정치 에디터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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