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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모든 과학논문의 원문 무료로 볼 수 있다

중앙선데이 2014.11.16 03:31 401호 2면 지면보기
‘사이언스 센트럴’은 세계 최초로 전세계 모든 과학논문의 원문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공개 접근(open access)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과학자의 지식은 한 편의 논문으로 집약된다. 연구와 실험을 거쳐 입증된 가설은 논문으로 정리된 후에 비로소 ‘대중의 지식’이 된다. 한 명의 과학자는 자신이 한 연구의 ‘정수(精髓)’를 담은 논문을 통해 국가와 시간을 넘는 영향력을 미친다.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과학자는 조국이 있지만,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공개접근 방식 플랫폼 ‘사이언스 센트럴’ 선보여

 그런데 요즘은 과학에 거대한 장벽이 생겼다. ‘돈’이다. 현재 세계에서 나오는 논문 중 60%는 거대 출판사가 상품처럼 판매한다. 논문 요약문(초록)만 공짜로 볼 수 있고, 전문을 확인하려면 5~40달러(약 5000~40000원)을 내거나 아예 출판사가 발행하는 논문집을 사야 한다.

 란셋(Lancet)·셀(Cell) 등을 비롯한 2900여 종의 학술지와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 기업 엘스비어(Elsevier)는 이 같은 방법으로 연간 4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다. 가난한 나라, 돈 없는 학생일수록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도 소재 A대학 박사과정인 한모(29)씨는 “대학별로 저널 구독예산이 있어 다른 학교의 아이디를 빌려 논문을 보거나, 구글에서 검색해 읽기도 한다”며 “연구자로서 박탈감도 들고, 지식격차가 생기진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고 걱정했다.

거대 출판사들이 논문 60% 팔아
연구의 공개·개방은 “최소한 공적 연구비가 투입된 논문을 상업적인 목적보다 학술적인 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데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면서 시작됐다. 2002년 이런 내용을 담은 ‘부다페스트 공개접근 선언(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이 나온 뒤 이제까지 연구공개정책(Public Access Policy)을 도입한 나라는 미국·영국·독일 등 세계 49개국에 달한다.

 특히 이런 추세는 의학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의학도서관에서 운영하는 ‘PubMed Central(이하 PMC)’에는 현재 280만 편에 달하는 의생명과학 관련 논문이 등록돼 무료로 대중에 공개된다. 그러나 단일 분야에만 국한됐고, 언어가 영어로 한정된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거대 출판사와의 갈등, 학회·기관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 부족과 논문 포맷 수정 등 등재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국내 사이언스 센트럴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학·공학·농수산·보건 등 모든 과학분야의 논문 원문을 무료로 제공하는 플랫폼은 세계 최초다. 벌써 유럽질병관리본부 등 해외 유력기관까지 학술지 게재에 관심을 보일 만큼 반응이 뜨겁다.

 세계적인 IT기업인 구글의 논문검색 엔진인 ‘구글 스콜라(google scholar)’ 담당자는 지난해 직접 한국을 찾아와 관련 논의를 진행하며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한국과총 이정민 학술진흥본부 선임연구원은 “80여 개 언어의 논문 번역을 지원하고, 구글 스콜라 검색에서 사이언스 센트럴에 게재된 논문을 상위에서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한국판 SCI’ 만들 발판 마련
논문 공개접근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은 지식공유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그중 하나가 ‘논문 주권의 회복’이다. 거대 출판사가 발행하는 학술지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과학기술이나 과학자의 역량은 어느새 학술지에 의해 평가받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톰슨사이언티픽사(社)가 논문 인용도 및 파급력을 고려해 매년 4000여개씩 선정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Science Citation Index)이 대표적이다.

 공개접근 방식은 이처럼 학술지의 ‘이름값’을 빌리지 않는 대신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 주도의 ‘토종 SCI’를 만들 수 있는 터전이다. 한국과총 오승원 학술진흥본부장은 “논문의 자유로운 접근을 통해 다른 논문의 인용이 늘면 피인용도(Impact Factor·IF)를 높이면서 학술지가 자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할 수 있다”며 “실제 공개접근 방식으로 제공하는 의료학술지 ‘PloS One’은 성과 높은 논문을 잇따라 게재하면서 창간 7년 만에 종합의학학술지 분야 상위 5위에 드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승종 교수는 “국내 학술지의 논문도 독자층이 두텁고 수준이 높지만 지금껏 접근성이 낮다는 이유로 저평가된 경향이 있다”며 “사이언스 센트럴을 통해 국내에서 발행되는 논문의 양과 질적 향상을 모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이언스 센트럴이 자리를 잡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공개접근은 기존 출판 형식에 비해 논문의 질적 수준을 담보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 세계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논문 내용과 수준을 감시할 수단이 필요하다.

자발적 참여 이끌어 낼 방안 마련 과제
사이언스 센트럴에 등록하는 논문은 태그(HTML 문서를 이루는 문법적 표시)로 구성되는 XML 형태로 재가공돼야 하는데, 기술과 인력을 보유한 나라가 부족한 것도 흠이다. 무엇보다 국내 학술지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과총의 계획은 연간 50억원가량의 학술비 지원 평가지표에 논문 기탁을 포함한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학회의 반발을 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자출판업계의 저항도 예상된다.

 이승종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각 나라의 연구지원 기관 수장이 참석하는 세계연구기금기관연합회(Global Research Council)를 통해 세계 각국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며 “국내에서도 전자출판업계와 학회, 기관을 대상으로 내년 1월께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공개접근(오픈 액세스)= 법적·경제적·기술적 장벽 없이 이용자 누구라도 인터넷상에서 학술논문을 합법적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ubMed Central’은 국내 의학학술지 31종을 포함해 모두 280만여 편의 논문이 무료로 공개돼 있다.

박정렬 기자 lif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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