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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기둥이고 창문·길·담이 되는 곳

중앙선데이 2014.11.15 06:24 401호 23면 지면보기
후지모토 소우(藤本壮介·43)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가장 명쾌하게 풀어낸다고 평가받고 있는 일본의 차세대 대표 건축가. 일본건축가협회 신인상(2004년)과 대상(2008년), 제 13회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2012년)을 탔고,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에게 맡기는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 초청 설계를 수행(2014년)했다.
사람들이 도서관에 대한 좋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이 떠올리는 말, 나 역시 몇 번씩 길어 올린 말은 ‘도서관에서 길을 잃어 본 근사한 경험’에 관한 것이다. 도시에서 길을 잃으면 낭패라고 생각하지만, 도서관 서가에서 길을 잃는 것은 그렇지 않다. 우연히 만나게 된 책으로 인해 즐거운 기분까지 들곤 한다.

강예린·이치훈의 세상의 멋진 도서관 <3>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 도서관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유희를 의도하고 지은 도서관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일부러 길을 잃고 헤매기 쉽게 만든 도서관을 살펴보기 위해, 도쿄 외곽의 소도시 무사시노(武蔵野)로 향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Musashino Art University)의 대학 도서관이 오늘의 목적지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는 ‘제국미술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62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세계적인 디자인 명문대학교다.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서 찾아보니, 영화 ‘4월의 이야기’ 속 20세 여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던 선배를 따라 들어간 대학이 바로 이곳이다.

첫사랑에 환하게 번졌던 영화 속 캠퍼스와 달리, 실제의 교정은 예술에 대한 분명한 의도와 태도를 갖춘 건물들로 즐비했다. 그 중에서도 마치 하나의 개념미술 작업처럼 지어진 도서관 건물은 단연 눈에 띄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도서관 정면에는 책장이 가장 앞에 나서고 있다. 책장이 기둥이고 보(beam)이고, 창문이고, 길이며, 담도 이루고 있다. 책장으로 지은 집 아니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도서관이야말로 건축의 도움 없이 책만으로도 그 깊이와 공간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건축이라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의 도서관은 그것을 증명하듯 서 있다.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이룬 인테리어
책장 아래로 난 크지 않은 입구를 통해 도서관에 들어갔다. 내부 역시 보이는 전부가 책장과 책이다. 거대하게 솟아난 책장이 8.5m의 기둥이 되어 지붕을 받치고 있고, 떠있는 다리가 책장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내고 있으며, 책장으로 된 계단이 사람을 2층으로 올리고 있다.

천정마저 반투명 재질로 살짝 가린 식이어서, 마치 지붕 아래 책장이 자라고 있는 책의 숲과 같은 기분이 든다. 가볼 수 없는 지하 수장고를 제외하고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상 1층 연구 층(research floor)과 지상 2층 공부 층(study floor)의 모든 내부 경관은 오로지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통역을 위해 기꺼이 먼길을 동행해준 도쿄에 사는 오랜 벗은,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온 기분”이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과자로 된 집처럼 달콤하고 흥미롭고 더 나아가 호기롭게도 보인다.

그렇다고 이곳의 모든 책장이 다 책꽂이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6단 위로의 책장은 책을 꽂는 용도 보다는 건축의 마감용으로 쓰였다. 외부에 쓰이는 책꽂이 역시 책의 집을 상징하는 마감 재료다. 여기에 따라 재료조차 달라지는데, 진짜 책꽂이는 일본 들메나무(Japanese Manchurian ash)로, 마감재료로 쓰이는 책장의 위쪽 벽면은 일본피나무 (Tilia japonica)다. 도서관 바깥은 측백나무(red cedar)로 구분해 사용했다.

우주처럼 확장되는 책의 미로
이 ‘책의 집’을 찾는 방문객이 꽤 되는지, 학생들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일반인의 방문이 제한되어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금요일, 그것도 2주 전 예약했을 경우에만 잠시 방문할 수 있기에, 조급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방문객들에게는 오로지 2층만 공개되는데, 이곳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건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에 대해서는 이미 지어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네덜란드에서 이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강연을 통해 미리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자신의 건축을 설명했는데, 말투와 달리 보여주는 건축의 개념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특히 도서관을 설명하면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강렬했다. 마치 ‘보르헤스의 도서관’(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에 나오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빠져 나온 듯한 서가의 스케치가 인상적이었다. 회전하며 증식하는 서가를 위에서 본 그림인데, 책의 미로가 우주로 확장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이날 나는 이 기억 속 이미지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 거였다.

무덤처럼 잠든 책을 깨우는 기쁨
보통 도서관의 서가는 ‘총류(0)->철학(1)->역사(2)->사회과학(3)->자연과학(4)->기술(5)->산업(6)->예술(7)->언어(8)->문학(9)’ 이렇게 0에서 9까지 분류에 따라 차례대로 나란히 배치된다.

하지만 이곳의 서가는 0번 총류에서 9번 문학까지 회오리처럼 둘려져 있다. 그 사이를 방사상으로 뚫고 지나가는 길을 두어 이 겹겹이 쌓인 미로의 서가 사이를 이용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 했다. 책장이 벽이 되고 그 아래로 난 게이트를 통해서 그 뒤의 책의 벽으로 연결되고 또 이 아래 게이트를 통해서 이 뒤의 서가로 연결되는, 책장으로 연속되는 방사상의 터널이 눈에 띈다. 4.8m의 천장 끝까지 닿는 높은 서가와 3-5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서가, 저마다 다른 위치와 크기로 난 책장 터널 때문에, 회전하는 돌아가는 서가들은 차곡차곡 중첩되어 보인다.

낮고 높고 저마다 모양을 가진 서가와 다양한 표지판의 조합이 서가 사이로 난 길 모두를 저마다 개성 있는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끔 만드는 방향성이 없는 서가다. ‘7번 예술’ 서적 쪽으로 가는 길은, ‘4번 자연과학’과 ‘2번 역사’와 ‘9번 문학’을 거쳐서 갈 수도 있고, ‘0번 총류’와 ‘5번 기술서적’을 통해서 갈 수도 있다. 선택하게 되는 길에 따라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책들도 다르지 않을까? 이 매번의 선택으로 마주하는 책의 우연들이 점차로 예술을 하는 방향을 정하게 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직 발견되지 않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무덤처럼 잠이 들어 있기 쉽다.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쉽게 잠들고 말아버리는 책들을 깨우기 위해서 이런 장치를 했다. 바닥과 벽에 있는 서가의 배치도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보여 준다기보다, 어디로 갈지 여정을 고민하게 하는 지도다. 물론 길을 잃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책의 집이 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우연이 이 안에 있다.


강예린·이치훈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도서관 산책자』『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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