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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만 했다고? 수없이 실패했다 … 게임과 심리학은 상통

중앙선데이 2014.11.16 00:40 401호 8면 지면보기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네시삼십삼분 사옥에서 권준모 의장이 회사명이 새겨진 조형물에 기댄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네시삼십삼분]
지난주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는 라인과 텐센트의 공동 투자 소식에 술렁였다. 두 회사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이라는 점과 투자 액수가 1300억원이라는 점, 네이버 라인과 텐센트 위챗이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 관계라는 점 등에서 시선이 쏠렸다. 무엇보다 화제가 된 건 두 회사가 손잡고 투자한 곳이 게임 매니어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네시삼십삼분’이라는 이름의 중소 벤처였다는 점이다.

라인·텐센트서 1300억원 투자받은 ‘네시삼십삼분’ 권준모 의장

지난 14일 중앙SUNDAY는 네시삼십삼분의 권준모(50) 의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옥을 찾았다. 그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진공관 앰프가 놓여진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제야 방금 지나쳐온 1층 입구에 첨단 IT업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장 난 앤티크 시계, 고색창연한 앤티크 의자가 놓여 있던 게 생각났다.

-경쟁 관계인 두 회사가 거액을 함께 투자한 배경이 궁금하다.
“양측에서 올 초부터 관심을 보여왔다. 라인과 텐센트가 워낙 거구들이다 보니까 기존 주주들과 조정할 일이 많아 시간이 걸렸다. 라인(5억6000만 명)과 위챗(7억 명)의 가입자를 합하면 13억 명에 달한다. 위챗은 주로 중국, 라인은 일본과 동남아에서 강세여서 공동 비즈니스를 하면 서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본다. 이번 투자는 IT산업에서 플랫폼만큼 콘텐트가 중요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백화점을 잘 지어놓아도 좋은 상품이 입점하지 않으면 망하지 않나.”

-게임산업이 과거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은데.
“인류 역사에 BC와 AD가 있는 것처럼 산업 역사는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 시대로 양분된다. 앱으로 음식을 배달시키고 백화점 쇼핑을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상품도 엔터테인먼트도 스마트폰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40~50대 주부들이 애니팡 같은 게임에 열광할 줄 누가 알았나. 모바일 게임에 아직 진출할 영역이 많다. 게임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같은 엔터테인먼트 상품들도 스마트폰을 계기로 폭발하고 있다. 우리도 게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모바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제자들 창업 돕다 벤처사업가로 변신
권 의장은 게임 업계에서 ‘실패하지 않는 연쇄 창업자’로 유명하다. 경희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다 교내 창업 경진대회 심사위원으로 나간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학생들의 창업을 돕다가 아예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성공이 불확실한 게임업에 뛰어들기 위해 교수직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원래 게임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 오락실에서 살았다. 대학원 시절에 온라인 게임에 빠져서 한 한기 시험을 망친 적도 있다. 게임 매니어로 알려지면서 문화부에서 자문 등 여러 일을 맡겨 왔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벤처붐이 일면서 교내 창업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심사위원을 맡았다. 여기 참가했던 학생들의 창업을 도와주다 동업자가 됐다. PC방에 모여서 컵라면을 먹어가며 토론할 정도로 학생들의 창업 열기가 뜨거웠는데, 동아리방조차 없었다. 교내 창업보육센터에 이 친구들 일할 곳을 만들어 주려 했더니 법인을 설립하라고 하더라. 학생들이 돈이 없으니 내가 빚 5000만원을 내 법인을 설립해 주고 지분 일부를 갖게 됐다. 이들과 ‘대두신권’이라는 액션 게임을 만들어 SK텔레콤에 출시했다. 첫 달에 370만원을 벌었다. 학생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며 자축하던 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제자들과 엔텔리전트라는 회사를 차린 지 3년 만인 2004년 ‘삼국지 무한대전’ ‘삼국지 천하통일’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출시해 소위 대박을 쳤다. 이후 회사를 넥슨에 매각한 뒤엔 넥슨모바일 대표를 맡아 ‘모바일 메이플 스토리’로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넥슨 대표 시절엔 회사를 연 매출 5000억원대로 키웠다. 이후 2009년 6월 엔텔리전트를 창업했던 제자들과 ‘433(네시삼십삼분을 그는 그렇게 줄여 부른다)’을 창업한 뒤 ‘수호지’ ‘활’ ‘블레이드’ 등 히트작을 잇따라 출시했다.

게임 개발 때 심리학 모든 요소 반영
-심리학이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되는가.
“드라마·영화가 구경꾼 엔터테인먼트라면 게임은 참여 엔터테인먼트다. 직접 들어가서 플레이해야 한다. 나는 심리학 중에서도 동기 심리학을 전공했다. 게임은 동기적 요소가 중요하다. 게임을 만드는 일은 모티베이션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첫 번째 히트작 ‘활’을 예로 들면 일대일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승리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게 했다. ‘날 이기려면 백 년도 멀었다’ 이런 말을 남기면 듣는 이에게도 재미 요소가 배가된다. 게임 제작 때 경쟁심리, 협동심리, 보상심리, 과시욕구 등을 고려해 반영한다. 심리학은 게임과 아주 잘 어울리는 학문이다. 실제 우리 회사에 석사 출신을 포함해 심리학 전공자가 많다.”

-창업에 늘 성공하는 비결은 뭔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수도 없이 실패했다. 중요한 건 성공과 실패라는 말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으면 실패가 없어진다. 많이 넘어질수록 넘어지지 않는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훨씬 많이 배우고, 실패가 쌓여야 성공이 된다. 다만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선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업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에 음식점이 수도 없이 많지만 줄 서서 먹는 곳은 많지 않다. 줄 서서 먹는 곳은 인테리어나 위치 때문이 아니다. 맛이다. 음식업의 본질이 맛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다.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내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넥슨 대표 재임 중 한국게임산업협회장도 맡았다. 학생을 가르치던 사람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그러면서 게임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게임의 폐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게임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지적이 많다.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는 정신적 샤워에 있다. 스트레스, 돈 문제, 인간 관계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때 영화를 한 편 보면 맑아지는 것과 같다. 1970년대 TV는 인류의 적처럼 여겨졌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커버스토리로 다룰 정도였다. 지금 TV가 대세가 됐지만 타임의 걱정처럼 인류는 바보로 전락하지 않았다. 게임이라는 참여 엔터테인먼트도 좋든 싫든 미래 주력 산업이다. 게임이 인지 발달을 돕고, 전략적 사고를 증가시키고,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며, 사회의 민주화 정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얘기들을 모두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은 고정된 채널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채널을 한 칸만 돌리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매일 보는 채널만 틀어놓는 것이다. 세계에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몇 안 된다. 한국인이 만든 게임 속에 한국 문화가 다양하게 표현돼 있다. 게임은 가장 큰 문화 수출품이다. 고정된 채널, 과거의 채널로 세상을 보니까 게임을 백안시한다.”

-중독성은 지나친 걱정이고 산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얘기인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는 좌뇌(左腦)의 시대였다. 이성과 논리의 시대였다. 대한민국이 이 영역에서 빨리 따라가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나라 미래는 우뇌에 달려 있다. 감성의 영역이다. 1800년대 말 파리시민 대다수가 미술과 전시를 보러 다녔다. 그들의 패션과 디자인 감각을 우리가 어떻게 쫓아가겠나. 이제 우리 어린이들을 음악회나 미술관에 데려가고 다양한 디자인을 접하게 하는 쪽으로, 다시 말해 우뇌를 키우는 쪽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 미래는 창의성에 달려 있다. 게임뿐 아니라 무궁무진한 창조산업이 우뇌에서 나온다.”

-조직원들의 창의성을 어떻게 끌어내나.
“내 모토는 ‘직원들을 좀비로 만들지 말자’다. 회사가 커질수록 직원들의 생각이 멈춘다. 위에서 명령하고 지시하면 따르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말살된다. 내가 일을 안 할 때 우리 회사는 가장 창의적이 된다. 하명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아이디어가 나오고 일을 한다. 창의성이 필요한 회사들이 기존 대기업처럼 관료화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 수평적이지 않은 벤처엔 미래가 없다. 우리 회사도 직원이 160명이나 되는데, 나는 가능한 한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는지를 구상한다. 회사는 인재가 성장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명사의 시대 지났고 이젠 동사의 시대
인터뷰를 마치면서 새삼 회사 이름의 연원, 진공관 앰프, 앤티크 시계와 의자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는 매우 길게 이렇게 답했다.

“진공관 앰프는 소리가 부드러워서 음악 들을 때 쓰려고 구했다. 회사 이름과 시계, 의자는…(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그걸 꼭 설명해야 하나. 그런 의문을 갖는 것과 그걸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게 산업화 시대의 마인드다. 규정하고 설명하면 한정된다. 나는 똑 부러지게 규정하는 명사형이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많은 동사형 사람이 다수인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433은 폰트가 예쁘고, 어감이 재미있고, 느낌이 좋고, 뭐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다. 시계·의자도 그냥 느낌이 좋다. 이렇게 해석이 열려 있는 구조라야 재미있고 발전의 여지가 있다. 명사형 세상에서 명사형 선생들이 명사형 교육을 하니, 이름 붙이고 스펙 쌓는 세상이 된 거다. 정답을 적어내고 채점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 교육 속에서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친구들은 정답이 똑 떨어지는 공무원시험이나 사법시험에 몰린다. 미래 세상은 동사형 사람이라야 성공한다. 동사형 인간이라야 살아 있는 마음으로 도전하고 우뇌를 앞세워 창조경제를 만들어낸다.”



권준모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에서 10년간 심리학 교수를 한 뒤 엔텔리전트 대표, 넥슨모바일 대표, 넥슨 대표와 게임산업협회 3기 회장을 지냈다.


박태희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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