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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거나 엉뚱하거나 … ‘비정상’에게만 허락된 별난 상

중앙선데이 2014.11.16 01:25 401호 15면 지면보기
올해 이그 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기타사토대학 마부치 기요시 교수. 마부치 교수는 바나나 껍질의 마찰계수가 낮아 사람이 밟으면 충분히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AP=뉴시스]
긴급 시 쓸 수 있는 ‘브래지어 방독면’을 개발한 옐레나 보드나르 박사(왼쪽). 2009년 이그 노벨상 공중보건상을 수상했다.
‘거꾸로 상’은 문자 그대로 1등 대신 꼴찌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프랑스의 ‘붉은 랜턴 상’은 사이클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Tour-de-France)’에서 가장 마지막에 결승점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우승을 못하느니 이 상이라도 받겠다며 치열한 꼴찌 경쟁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따끔·따뜻한 ‘거꾸로 상’의 세계

물론 꼴찌 경쟁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불명예상’이기 때문이다. 오스카(Oscar)를 뒤집은 ‘골든래즈베리상(The Razzies·Golden Raspberry Awards)’이 대표적이다. 최고의 영화가 아닌 최악의 영화와 최악의 연기자에게 상을 준다. 1981년 출판업자인 존 윌슨이 만들었는데, 표값으로 1달러 내기도 아까운 영화를 뽑자는 취지에서 처음 제정됐다. 래즈베리는 나무 딸기를 뜻하는데, 미국 속어로는 야유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줄여서 래지상으로 부른다.

“최악 통해 교훈 얻어라” 메시지
2013년 골든래즈베리상 작품상은 휴 잭맨·에마 스톤 주연의 ‘무비43’가 수상했다.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은 ‘애프터 어스(After Earth)’의 제이든 스미스·윌 스미스 부자가 받았다. 오스카 최고의 배우가 최악의 배우로 바뀐 경우도 있다. 2004년 영화 ‘캣우먼’의 핼리 베리가 이 상을 받았는데, 오스카 상을 받은 지 정확히 2년 만에 오른 ‘최악의 배우’ 자리였다.

이탈리아의 황금쓰레기통상(Bidone d’oro)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에서 그 시즌 최악의 경기를 한 선수에게 주어진다. 2004~2005시즌에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인터 밀란)가, 2010~2011시즌에는 디에고 밀리토(인터 밀란)가 받았다. 2011~2012시즌 알렉산드레 파투(AC 밀란)를 끝으로 잠시 시상식을 중단한 상태다.

시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최악의 경우를 들어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 대부분. 피노키오상에도 ‘더러운 손, 가득 찬 지갑’ 부문뿐 아니라 ‘너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나를 위해’ ‘푸르게, 더 푸르게’ 등 여러 부문이 있다. 각각 노동 착취를 일삼고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기업에 상을 주는 부문이다.

‘다윈상’은 황당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한다’는 것 때문에 ‘다윈’을 붙였지만 이들이 목표로 하는 바는 ‘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0%로 떨어뜨리는 것(Zero Accidental Deaths)’이다. 우리나라에선 2010년 대전 지하철 엘리베이터 사고로 추락사한 30대 신체 장애인에게 상이 건네지는 불행이 있었다. 당시 이 남성은 전동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엘리베이터 문을 두 번가량 들이받았고 이 충격으로 문이 열려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의식 일깨워주는 다윈상
다윈상 위원회의 웬디 노스컷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다윈상은 안전에 대한 교훈을 주기에도 좋고 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상은 차의 핸드 브레이크를 걸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차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한 영국인 남성에게 돌아갔다.

황당한 소송사건을 다루는 ‘스텔라 상(Stella Awards)’도 비슷한 경우다. 1992년 스텔라 리벡이라는 미국 여성이 차에 탄 상태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이용하던 도중 잘못해 뜨거운 커피를 다리에 쏟아 3도 화상을 입었다. 리벡은 88도나 되는 뜨거운 커피를 내주면서 아무 경고도 하지 않은 맥도날드에 대해 소송을 했고 배심원단은 맥도날드가 리벡에게 27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을 평결했다. 그 뒤로 맥도날드는 컵에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후 이와 같이 엉뚱하지만 세상을 바꾼 소송들에 대해 매년 시상식이 열렸는데, 명칭도 리벡의 이름을 따 ‘스텔라 상’으로 제정됐다.

‘거꾸로 상’을 받았다고 해서 ‘정상적인 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거꾸로 뒤집은 상이다. 주로 엉뚱한 발견이나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을 만한 기발한 발명을 한 사람에게 트로피가 주어진다. 긴급 상황에서 즉석 마스크로 활용 가능한 브래지어 발명(2009년 수상작. 미국에 특허출원돼 있으며 상품을 구매할 경우 49.99달러다. 기능상 B컵부터 나와 있다), 바나나 껍질의 미끄러움을 연구한 사례(2014년 수상작) 등 다양한 분야에 상을 준다. 시상식도 유쾌하다. 직접 와서 발명품을 시연하는가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교환하기도 한다. 이그 노벨상 설립자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발명에 대해 시상한다”고 말했다.

거꾸로 노벨상 받고 진짜 노벨상 타기도
엉뚱함과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 가운데 노벨상을 타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2000년 개구리가 반자성(反磁性)을 띤다는 사실을 증명해 이그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이후 2010년에는 차세대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도 수상했다. 한 사람이 노벨상과 이그 노벨상을 탄 경우는 현재로선 가임 교수가 유일하다.

양질의 연설을 많이 하지만 ‘횡설수설 상(The Foot-in-Mouth Awards)’을 타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8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나는 내가 뭘 믿는지 안다, 나는 내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분명히 계속해서 이야기할 건데 내가 믿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고 말해 이 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잘생겼고 젊고 약간 얼굴이 탔다”는 발언으로 횡설수설 상을 탔다. 현재 차기 대선 주자로 떠오르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나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미국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미국을 믿는다”고 말해 2012년 이 상을 탔다. 횡설수설 상은 ‘바른 영어 쓰기 캠페인’을 하는 영국 시민단체에서 시상한다.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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