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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트 수출의 63% 차지해도 ‘기 못 펴는 자식’ 신세

중앙선데이 2014.11.16 01:48 401호 18면 지면보기
“엎친 데 덮쳤다.”

표절 논란 휩싸인 한국 게임산업 진단

영국의 ‘게임 공룡’ 킹닷컴이 국내 게임업체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냈다는 사실을 들려주자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엎친 데’라는 표현엔 한국 게임업계가 처한 현실이, ‘덮쳤다’는 말엔 이번 소송을 보는 게임업계의 불안한 시선이 배어 있다.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그동안 한국 게임산업을 ‘밖에서는 당당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풀 죽는 자식 신세’에 비유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엔 ‘안에서 알아주지 않으니 밖에서도 기 못 펴는 자식’에 비유한다. 한국 게임산업은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표절 시비는 왜 벌어지는가.

온라인은 쇠퇴, 모바일은 개발자 포화
2013년 말 현재 전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1170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내 게임 시장은 73억 달러(약 9조7198억원)로 세계 시장의 6.3%를 차지한다. 미국(19.1%)·일본(15.8%)·중국(14.8%)·영국(7.9%)에 이은 세계 5위 규모다. 인구수를 감안하면 국내 게임산업이 대단히 활성화돼 있는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콘솔(TV에 연결해 이용하는 게임)이나 PC 게임에 비해 온라인 게임이 강세를 보인다. 발달한 인터넷 기술 덕분이다.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은 21.3%의 점유율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콘텐트 산업을 분야별로 나눠보면 국내 게임산업의 위상이 더 두드러진다. 올 2분기 콘텐트 산업 총 수출액 14억120만 달러 가운데 게임은 62.5%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 수출 증가율도 게임 산업은 26.1%에 달해 지식정보(22.8%)·만화(17.8%) 등을 앞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을 앞세운 K팝 열풍이 전 세계에 거세게 불지만 K팝이 콘텐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를 넘지 못한다. 게임 산업이 해외에선 ‘당당한 자식’인 이유다.

잘 발달한 네트워크와 높은 인터넷 보급률 덕에 국내 게임산업은 2000년대 들어 연간 20% 이상씩 성장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2012년 전 세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다 ‘피파온라인3’나 ‘디아블로3’ 같은 외국산 온라인 게임의 공세가 거세진 반면 국내에서는 히트작이 등장하지 못했다. 최근 국산 온라인 게임은 국내 시장 점유율이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밀리고 있다. 온라인 게임이 쇠퇴하는 이유는 우선 PC 이용 시간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 입장에선 ‘판로’가 예전만 못한 셈이다. 더구나 개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리스크가 큰 점도 부담이다.

모바일의 등장도 온라인 쇠퇴를 가속화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안드로이드 사용자 4명 중 3명이 게임을 이용할 정도로 모바일이 대세가 됐다. 일본에서는 무료 애플리케이션 10개 중 6개가 게임이다. 문제는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던 모바일 시장에서 예상과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모바일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개발자들이 과도하게 몰려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2012년 7월 말 카카오톡이 게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등록된 게임 수는 600개가량 된다. 이 가운데 1원이라도 매출이 발생한 게임은 48%에 그친다. 절반 이상이 개발 비용도 못 건졌다. 카카오톡에 업로드 조차 못한 게임 수를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국내 게임 시장의 56%를 차지하는 온라인 게임은 급격히 쇠퇴하고, 24%를 차지하는 모바일 게임은 더디게 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게임 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국내 게임 시장이 지난해에 비해 1.8%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올해 온라인 게임은 3% 감소하면서 조정기를 거치고 모바일 게임의 성장은 4.2%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게임, 히트 기간 짧은 게 한계
게임 표절 논란은 피처폰 시절부터 있었지만 모바일이 중요 플랫폼이 되면서 더 잦아졌다. 경쟁이 치열해 신작이 속속 나오다 보니 모바일 게임의 흥행 기간이 길어도 1년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짧다. 모바일 게임은 2012년에 전년 대비 89.1% 증가해 8000억원 규모로 커졌고 지난해 1조원, 올해는 1조3000억원 규모를 웃돌 정도로 성장 중이다. 시장은 커지는데 게임 수명은 짧다 보니 기획부터 출시까지 빠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발자들이 기존의 인기 있는 콘텐트를 모티브로 삼는 경우가 많다. 표절의 유혹이 커지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수백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5~10년의 장기 계획을 세워 개발에 매진해야 하지만 모바일 게임의 경우 5, 6명의 소규모 인력이 적은 자본으로 금세 만들 수 있다. 개발자들 입장에선 히트의 기간, 즉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불합리한 수익 구조도 모바일 게임 기업의 창의성을 꺾는다.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유저)들은 대부분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 같은 오픈 마켓에서 게임을 내려받는다. 이때 제작사는 오픈 마켓에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여기에 카카오 같은 퍼블리싱업체의 입점 수수료(카카오는 매출의 21%)는 별개다. 국내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카카오 기반의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 하나로 1000원을 벌면 각종 수수료로 510원을 떼이는 셈이다. 한때 종주국 소리를 듣다가 중국에 밀린 온라인 게임처럼 모바일도 외산 게임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는 이유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발목
게임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치부하는 등 부정적인 시각도 게임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 게임을 “알코올·마약·도박과 함께 척결해야 할 4대 사회악”이라고 해 개발자들의 반발을 샀다.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확대 등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 제도로 정착됐다.

게임을 백안시하는 기성세대와 다양한 게임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 사이의 인식 차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모바일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www.opensurvey.co.kr)가 전국 900명(중·고생, 학부모 각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부모와 자녀 간 학교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학교 폭력의 가장 큰 원인으로 학부모의 46.8%가 ‘폭력성을 부추기는 각종 미디어 및 게임’을 지목했다. 반면 학생 46.5%는 ‘가해 학생에 대한 적절한 처벌의 부족’을 꼽았다. 학부모들은 이어 ‘부모의 자녀에 관한 관심 및 지도 부족’과 ‘피해 학생 보호 체계의 부재’를 꼽은 반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 보호 체계의 부재’와 ‘경쟁과 서열을 중시하는 사회 환경’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학생들은 폭력의 원인을 게임이 아닌 사회구조에서 찾은 것이다.

IT전문가인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TV가 등장했을 때 TV의 유해성·폭력성 등이 논란이 됐지만 결국 주요 미디어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중독’이 아니라 개인들이 ‘활용’하는 미디어가 됐다”며 “게임도 부정적인 측면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산업 분야의 싹을 자르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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