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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마케팅] 이코노미 기내식이 레스토랑 코스요리로 변한 이유

중앙선데이 2014.11.16 02:15 401호 22면 지면보기
버진항공은 이코노미석 승객이 좁은 공간에서 식사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식사를 코스요리로 바꿨다. 왼쪽은 코스 선택을 번호로 만든 안내판. 작은 사진은 코스대로 서빙하는 모습과 식판.
남녀노소 모두 몸매관리에 열심이다. 독특한 식이요법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스마트폰 앱을 사용해 매 끼니 먹은 음식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다이어트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음식의 양과 영양의 균형을 조절하는 데 있다. 가령 하루 권장 채소량이 350g이라면 실제로 어느 정도 먹어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⑤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 3S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상품이 등장했는데, 그 방식이 정말 간단하다. ‘ETE plate’는 일반 접시 위에 다섯 개의 선만 그어놓은 모양새다. 필수영양소의 비중에 따라 접시를 분할한 것이다. 밥/면, 육류/생선, 채소, 샐러드 칸에 맞춰 음식을 담으면 매 끼니 정해진 분량의 음식으로 균형 잡힌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채소, 면, 고기류가 뒤섞인 메뉴는 ‘mix’ 칸 안에 담아 먹고, 소식을 다짐한 사람은 점선으로 처리된 ‘empty’ 공간을 비워두면 된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와 영양학자가 함께 개발한 이 접시는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에게 건강한 식생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 비만이 걱정되는 아이들이 사용하기도 쉽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 접시는 출시 직후 매진됐다.

작은 아이디어로 큰 문제 해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작은 아이디어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작지만 스마트하고(smart), 기분 좋고(sweet), 두드러진(salient) 차이를 발굴해 예상치 못한 큰 성과를 거둔 기업들이 있다. 버진항공(Virgin Atlantic)도 그중 하나다.

이코노미 클래스로 가는 장거리 비행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특히 기내식을 먹을 때면 좁은 트레이 위에서 옹색한 자세로 나이프와 포크, 그릇을 옮기기 바쁘다. 여러 음식을 정신 없이 한꺼번에 다 먹고 나면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잘 모른다. 이는 편안함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고객이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불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버진항공의 생각은 달랐다. ‘이코노미 클래스 고객에게는 기내식을 레스토랑의 코스요리처럼 대접할 수 없는가’라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회사 MAP에 이 문제를 의뢰했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표준화된 이동식 카트를 사용하는 조건까지 주어진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MAP가 내놓은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선 모든 음식을 한 번에 내놓지 않고 식전, 메인, 식후 요리를 차례로 제공하기로 하니 트레이는 메인 요리를 담을 정도의 사이즈면 충분해졌다. 또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던 포크·나이프를 슬림한 디자인으로 바꾸고 대신 투명한 보라색을 사용해 우아한 느낌을 더했다.

트레이 가장자리에는 작은 홈을 만들었는데, 카트에서 꺼낼 때 다음 트레이가 차례대로 끌어당겨지도록 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면 승무원이 다음 트레이를 찾기 위해 카트 속에서 손을 휘젓지 않아도 되고, 그만큼 서빙 시간도 단축된다. 트레이 소재는 스펀지 고무로 바꿔 난기류를 만나더라도 식기가 고정되어 음식물이 뒤섞이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탄생한 콤팩트하고 정갈한 새 트레이는 승객이 식탁 위 공간을 더 여유롭게 쓰도록 했고, 승무원들의 서비스 속도를 높여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코스 기내식’을 실현시켰다. 버진항공의 장거리 기내식에서는 먼저 식전 칵테일이 나오고, 뒤를 이어 샐러드와 메인 요리가 놓인 트레이가 나온다. 메인 요리를 다 먹으면 트레이는 거둬가고 디너 바 서비스가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디저트와 커피가 제공된다.

대부분의 항공사가 가격, 운항노선, 멤버십 서비스 경쟁에 치중할 때 버진항공은 기내식의 작은 변화로 독특한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버진항공을 이용한 한 고객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코노미 좌석이었는데 코스처럼 디저트가 따로 나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는 경험담을 올리기도 했다.

부피를 줄인 트레이의 가치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카트 한 칸에 트레이 3개를 싣는데 새 트레이는 4개를 실을 수 있다. 다른 항공사가 카트 4개를 사용할 때 버진은 3개만 쓰면 되는 것이다. 공간 활용의 효율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항공기당 무게가 평균 132㎏ 가벼워져 그만큼의 연료비가 절약됐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45% 줄어들었다. 작지만 스마트한(small but smart) 변화로 차별화와 비용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작은 손짓과 동작으로 고객 마음 잡아
고객 접점에서도 작은 손짓과 동작만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얼마 전 스타벅스는 ‘콜 마이 네임’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음료가 준비되면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는 간단한 내용이다. 사람의 귀에 자신의 이름만큼 달콤한 소리는 없다고 하니 작지만 기분 좋은(small but sweet)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시작된 지 20일 만에 약 20만 명의 고객이 스타벅스 홈페이지에 이름이나 닉네임을 등록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종이컵에 바리스타가 직접 손 글씨로 고객의 이름을 쓰고 불러주는데, 간혹 잘못된 스펠링으로 써진 컵을 받은 고객들이 투정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 입소문이 퍼지기도 한다. 마치 불평처럼 이야기하지만 브랜드에 대한 서운함이 친밀감으로 느껴지고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만들어진 듯하다.

베인앤드컴퍼니가 362개 기업을 대상으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상품들이 우수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물어봤더니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362개 기업 중 고객들로부터 가치 창출을 인정받은 기업은 8%에 불과했다. 그만큼 기업과 고객의 가치 인식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고 무의미한 부분에서 무모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고객에게 의미 있는 가치는 때로 기업이 고려하지 못했던 사소한 부분에서 발견된다. 자동차 매장을 나서는 고객 표정이 씁쓸한 이유는 기술력을 인정받는 자동차를 사려고 왔는데 막상 보니 집게발같이 생긴 조잡한 컵홀더가 눈에 거슬려 실망했기 때문일 수 있다. 작지만 두드러진(small but salient) 가치를 놓치면 100-1은 99가 아닌 0이 된다.

글로벌 마케팅 1위 기업으로 인정받는 P&G도 이런 실수로 낭패를 겪은 적이 있다. 일본 시장 진출 초기 P&G는 경쟁 브랜드인 유니레버의 유니참(Unicharm)에 비해 훨씬 뛰어난 흡수력의 팸퍼스 기저귀를 오히려 더 낮은 가격으로 출시했다. 빅 히트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품질에 자신 있었던 P&G는 다양한 과학적 실험으로 탄생한 팸퍼스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 엄마들은 특별한 이유도 표출하지 않은 채 거부해 연이은 실패를 안겨줬다.

팸퍼스 마케팅팀은 좀 더 많은 시간을 일본 엄마들과 함께 보내며 문제점을 찾아보기로 했고, 드디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일본 엄마를 신경 쓰이게 한 요소를 발견했다. 팸퍼스의 고무줄 부분 조임은 경쟁사 제품보다 조금 더 단단했다. 이것은 아기 피부를 약간 붉어지게 할 수 있지만 아기의 엉덩이를 보다 안정적이고 포근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심미적 부분에 민감한 일본 엄마들의 눈에는 기저귀가 아기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팸퍼스가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상품이 된 이유다.

P&G 팸퍼스, 고무줄 때문에 일본에서 고전
이런 일은 P&G가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일본 엄마들에게 팸퍼스가 아기 피부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안심하지 않았다. 결국 P&G는 일본 엄마 식으로 품질을 재정의해 제품을 개선했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사소함이 만드는 큰 차이는 우연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버진항공의 의뢰를 받은 디자이너들은 승무원들이 음식을 서빙하며 카트를 다루는 모습과 기내식을 먹는 승객들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수십만 마일을 비행했다. 드러나지 않은 불만 요소를 찾기 위해 P&G는 기저귀를 다루는 엄마들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 집요하게 관찰했다.

여심을 흔드는 플레이보이는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서운한 감정을 달래주고, 말하기는 구차한 사소한 불편함을 조용히 해결해준다. 제품과 브랜드의 매력도 고객에 대한 섬세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획일적인 경쟁의 룰을 쫓기보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소한 부분에서 영리하고 달콤하게, 그러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공저, 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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