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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호모 에렉투스, 불로 익힌 고기 먹고 점점 ‘인간다워져’

중앙선데이 2014.11.16 02:38 401호 25면 지면보기
두개골과 척추를 연결하는 구멍인 대후두공(왼쪽부터 1. 침팬지 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3. 호모 에렉투스 4.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 뒤쪽에 있던 대후두공은 뇌가 커짐에 따라 점차 두개골의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유럽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비교적 분명했다. 인간은 약 6000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아담과 하와(이브) 이후 지금까지 같은 사람들이란 것이다. 6000이란 수는 어디에서 왔을까. 할 일 없는(?) 수도승들이 성서에 나오는 족보를 보고 계산했다.

<18> 인류와 유인원·원인의 차이

그들의 계산엔 1000년 이상의 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이는 전승된 문서에 공백도 있고 서로 모순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계산은 정교해졌다. 1654년 아일랜드의 주교 제임스 어셔는 유명한 계산 결과를 발표한다. 하느님이 기원전 4004년 3월 23일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생명의 점진적인 진화를 믿는 과학은 다른 시공간을 계산했다. 1950년대 인류학자들은 인간과 유인원이 갈라진 시점이 대략 60만 년 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사이에 60만 년은 700만 년으로 늘어났다. 더 오래된 뼈 유물이 계속 발굴된 까닭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유인원(類人猿)과 원인(猿人) 그리고 우리가 우리 선조라고 인정할 수 있는 인류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한 기준에 합의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유인원은 사람과(科)에 속하지만 사람이 아닌 동물, 즉 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와 보노보를 말한다.

인류와 유인원에겐 다른 동물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잡을 수 있는 손, 3차원으로 보는 눈, 그리고 커다란 뇌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나무 위에서 생겼다. 4000만 년 전엔 나무 꼭대기를 피난처이자 사냥터로 삼았던 다람쥐 크기의 포유류였다.

유인원·코끼리만 가방 5㎞ 옮길 수 있어
처음엔 발톱을 이용해 가지 위를 뛰어다녔지만 점차 잡을 수 있는 손을 발달시켰다. 27개의 뼈와 36개의 관절과 엄지손가락을 가진, 고도로 조직화된 손은 다른 모든 동물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가방을 5㎞ 정도 나를 수 있는 동물은 유인원을 제외하면 코끼리뿐이다.

다른 동물들은 힘이 있어도 가방을 잡을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눈이 머리 양쪽에 있는 물고기나 영양과는 달리 유인원들의 눈은 나란히 앞을 향해 있다. 이런 눈 덕분에 깊이를 인식하고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원근법적인 시각 능력이 생겼다. 원근법적인 시각 능력이 강화될수록 더 먼 가지로 도약할 수 있다. 거리를 잘못 가늠한 유인원들은 나무에서 떨어졌다. 이들은 우리의 선조로 이어지는 길에서 중도 탈락했다.

손과 눈이란 두 장점은 모든 유인원에서 큰 차이 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세 번째 장점인 커다란 뇌의 경우 다른 유인원과 인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 우연히 커다란 뇌를 갖고 태어났다. 그리고 자연은 그에게 더 큰 생존 가능성을 부여했다. 이들은 눈으로 들어오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무에서 내려와도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이들은 숲에서 나와 나무와 덤불이 있는 사바나 초원지대로 나섰다. 인간으로 향하는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유인원과 원인은 직립보행 능력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로 구분할 수 있다. 직립보행 능력 없이 숲에서 나와 사바나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키가 1m30㎝ 정도에 불과한 존재들이 초원지대에서 시야를 확보하려면 서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00만~600만 년 전에 살았던 아르디피테쿠스(Ardipithecus)는 유인원일까, 원인일까.

화산재에 새겨진 인류 최초의 가족사진
1992년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야아시 강에서 발견된 아르디피테쿠스는 모호한 경계에 있다. 아르디피테쿠스는 ‘땅에 사는 원숭사람’이란 뜻이다. 직립보행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침팬지와 고릴라의 여러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학자들은 아르디피테쿠스가 초원보다는 숲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크며 이동할 때는 침팬지처럼 팔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00만 년 전에 살았던 ‘남쪽 원숭사람’이란 뜻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 pithecus)도 마찬가지다. 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여인 화석은 이마보다 많이 튀어나온 주둥이, 작은 뇌, 다리보다 긴 팔, 여전히 작은 키를 보여준다. 이 골격 화석을 발견했을 때 탐사 캠프엔 영국의 팝그룹 비틀스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루시’란 별명이 붙었다.

루시는 직립보행을 했지만 여전히 나무를 오르내리고 탔다. 루시 일행은 맹수들의 삶에 기생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발 때문에 마치 오리발을 신은 것처럼 어기적거렸지만 풀을 뜯는 영양 떼를 쫓으면서 맹수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표범 같은 맹수가 나타나면 곧바로 나무 위로 피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맹수는 루시의 사냥개 역할을 했다. 루시에겐 날카로운 발톱이나 송곳니가 없다. 그렇다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맹수가 사냥감을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는다면 그 질긴 가죽을 어떻게 벗길 도리가 없었다. 맹수들은 자신들이 사냥한 먹이를 끝까지 먹어 치우진 않는다. 배부른 맹수는 덤불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남은 시체는 대개 독수리와 하이에나 차지지만 루시도 시체를 둘러싼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돌멩이와 막대로 경쟁자를 내쫓았다.

루시가 살던 시절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 인근에서 화산이 터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족은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남편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내는 남편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옆에선 철없는 아이가 장난치며 걸었다. 그들의 발자국은 비에 젖었다가 햇볕에 말랐다. 발자국은 큰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맞닿을 수 있게 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더 이상 유인원이 아니었다. 세 사람의 발자국은 인류 최초의 가족사진이다.

두개골 밑바닥엔 척추와 연결되는 구멍이 있다. 이것을 대후두공이라고 한다. 네 발로 걷는 개는 대후두공이 두개골의 뒤쪽 끝에 있다. 수평으로 놓인 척추 끝에 두개골이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다. 작은 뇌를 지탱하기에 충분하다. 주먹을 사용해서 걷는 침팬지는 대후두공이 약간 안쪽에 들어와 있다. 나무와 들판을 오가며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대후두공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에 비해 19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곧선사람, 직립원인)의 대후두공은 두개골의 거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우리가 속한 호모 사피엔스의 대후두공은 두개골의 한가운데에 있다. 커다란 뇌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대후두공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뇌 크기, 유인원 두배였던 호모 하빌리스
그렇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뇌가 커지고 두개골의 형태마저 바꾸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50년대 이후 한동안 ‘육식(肉食)’이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를 촉발했다는 학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여기엔 허점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침팬지와 비슷하게 육식동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만 있으면 원숭이나 들판에 사는 짐승의 새끼들을 잡아먹었지만 몇 달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학자들은 그러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 사이에 있는 중간 단계를 찾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의 260만 년 전 지층에서 날카로운 돌 박편들이 발견됐다. 자세히 보니 자갈을 일부러 깨 얇게 만든 것이었다. 이 돌칼은 죽은 짐승의 혀를 잘라내고 사지의 힘줄을 가르며 고깃덩이를 떼어내는 데 사용됐다.

이 돌칼의 주인은 23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손쓴 사람)다. 호모 하빌리스는 뇌의 크기는 유인원보다 두 배나 컸지만 긴 팔과 돌출된 얼굴 그리고 몸집은 여전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했다.

수준 낮은 도구를 사용한 호모 하빌리스는 썩은 고기를 먹었다. 한때 학계에선 호모 에렉투스는 이보다 수준 높은 도구를 사용했고 숙련된 사냥꾼이었을 것이란 아이디어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호모 에렉투스의 턱과 이빨이 작아졌다는 사실을 간과한 발상이다. 턱과 이빨이 작아졌다는 것은 호모 에렉투스가 질긴 날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호모 에렉투스에겐 다른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과연 무엇일까.

원숭이는 뭔가 계속 씹어야 체온 유지
바로 ‘불’이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로 음식을 익혀 먹었다. 음식을 익히면 질긴 음식이 자르거나 으깨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또 음식이 덜 변질되고 더 안전해지며 소화가 잘 된다. 음식을 익히자 거기에서 얻는 에너지양이 늘어났다. 생존에 유리해졌고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었다. 지금도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와 원숭이를 보면 하루 종일 뭔가를 씹고 있다. 그래야 겨우 자기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한 시간 이내로만 씹어도 체온을 충분히 유지한다. 남은 에너지를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쓰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에게 생긴 여분의 에너지 가운데 일부도 뇌를 키우는 데 쓰였다. 뇌가 커지면서 뇌를 충분히 받치기 위해 대후두공은 점차 두개골의 중심으로 향했다.

인류의 먼 조상인 아르디피테쿠스의 발바닥이 단단해진 덕분에 인류는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숲의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의 초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자유로워진 손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 유용했다. 덕분에 맹수들이 사냥하고 남은 동물의 사체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또 불을 사용한 덕에 뇌가 급격히 커졌다. 커다란 뇌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는 더 이상 유인원과 헷갈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구를 사용하고 집단생활을 하며 서로 소통하는 동물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불을 사용하는 동물은 지구 역사 46억 년 동안 인류가 유일했다. 불은 여전히 인류와 다른 동물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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