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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무상복지 디폴트 예상보다 빨리 와 … 시장직 건 것은 잘못

중앙일보 2014.11.15 00:20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 9월 르완다 남단의 부타례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오세훈 전 시장은 “아이들과 한나절을 놀았는데 떠날 때가 되자 한 아이가 달려와 품에 안겨 떨어지질 않았다. 이 아이의 눈빛이 짠했다”고 말했다. [사진 오세훈]


“아이고, 안녕하셨어요?”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온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음성은 경쾌하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가까스로 연결된 인터넷 전화는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전기와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은 탓이란다. 그가 있는 곳이 비행기로 16시간 거리에 있는 중앙아프리카 동부의 작은 나라 르완다란 사실이 새삼 실감됐다. 오 전 시장은 한국국제교류재단(KOICA)의 중장기 자문단의 일원으로 지난 7월부터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시에 체류하며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페루(리마시 시정자문위원)에 이은 두 번째 나눔봉사다.

[이정민이 만난 사람] 오세훈 전 서울시장



 오 전 시장은 ‘무상복지 전쟁’의 원조 격이다. 2011년 야당의 100% 무상급식 안에 제동을 걸며 주민투표에 부쳤지만 개표 요건(33.3%)에 못 미치는 투표율(25.7%)에 그치자 시장직을 사퇴했다. 무상급식 정책은 재원 고갈로 인해 결국 예산을 투입하지 못하게 되는 복지 디폴트를 불러올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였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금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를 시발로 새누리당 쪽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못 하겠다고 선언하자 야당 지자체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만 3~5세 어린이 보육) 예산 지원을 못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무상복지 논쟁의 중심에 있던 오 전 시장은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전화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오세훈 전 시장은 매주 한 차례 우간다 산 슬리퍼 ‘보다보다’를 르완다 어린이들에게 나눠 준다. 한 번에 240켤레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 가져간다고 한다.
 -무상급식 vs 무상보육 논쟁을 어떻게 보나.



 “우리나라는 뭐든지 예상보다 빨리 온다. 10년 뒤쯤이면 다들 알겠지 생각했는데…늦었지만 다행스러운 토론이다. 이제 시작이다. 복지 안 하는 나라도 없고 복지 수혜자 폭을 넓혀 가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정략적인 동기를 갖고 갑자기 준비 없이 한꺼번에 시작해 문제가 된 것이다. 세입 먼저 정해 놓고 세출을 짜야 하는데 공약부터 정해 놓고 다른 방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다 보니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 아닌가.”



 -왜 무상급식에 반대했나.



 “시장 첫 4년 동안 지속가능형 복지, 자립형 복지 시스템을 완전히 정비해 놓았다. ‘희망플러스 통장’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 와중에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는 사람들을 파격적으로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그게 대 히트를 쳐서 중앙정부가 나중에 ‘키움통장’으로 확대했다. 어렵지만 허리띠 졸라매는 사람한테 혜택이 가도록 하는 복지 시스템을 정착시켰는데 야당이 난데없이 무상급식을 들고 나왔다. 소득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현금을 나눠줘야 하는 건데 그러면 기존의 자립형 복지 시스템은 다 포기해야 했다. 그건 잘못하면 복지 디폴트에 빠진다, 100% 무상복지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홍 지사가 무상급식에 예산 지원 못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홍 지사의 선택은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다만 당시 서울시와 지금의 경남은 사정이 다르다. 경남도 의회는 새누리당 의원이 다수지만 당시 서울은 시 의석의 4분의 3이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이었다. 시장이 구상한 정책을 펼치고 예산을 배정하려면 시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야당이 4분의 3을 차지한 상황에선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식물시장 신세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타협을 해보려고 나중엔 소득하위 70, 80% 선까지 (무상급식하는) 양보 안을 냈지만 민주당의 정략적 지시를 받은 시의회가 한 보도 양보를 안 했다. 민주당은 3무1반(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을 내걸고 총선과 대선을 치른다는 전략이었다. 반면에 표 앞에 장사 없다고 국정을 책임진 여당조차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지경이었다.”



 -주민투표가 최선이었나.



 “마치 오세훈이 주민투표를 선동한 것처럼 됐는데 그때 건전한 시각을 가진 80만 명의 시민들이 서명을 해서 주민투표로 간 거였다. 야당의 주민투표 불참운동으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지만 복지에 대한 논리적인 토론이 거듭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분이 감성적 판단에서 이성적 판단으로 돌아섰다고 본다. 고육지책으로 나온 야당의 ‘나쁜 주민투표 불참운동’은 정면 승부를 회피하는 사실상의 패배 선언이었던 셈이다.”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건 걸 후회하지 않나.



 “시장직을 건 것은 잘못이었다. 시장이라는 자리는 제가 선택하고 말고 할 자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부여해 주신 신성한 책무였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선택은 서울시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정치인이 모든 것을 걸 정도로 나라의 미래에 중요한 사안이라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은 과잉 충정의 발로였다고 생각한다.”



 -증세가 해법이 될까.



 “(야당은) 증세가 간단한 것처럼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증세안을 내놓으면 (국민적) 반대에 부닥칠 게 뻔하다. 쓸 돈은 부족한데 쓸 곳이 많을 땐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어디에 정책적 투자를 할 것인가, 나눠주는 대상과 방법의 우선순위가 뭐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면 왜 해법이 안 나오겠나. 우리 당의 정체성은 이것이다 하고 전면에 내걸어 놓고 하려고 하니까 토론이 안 된다. 다툼의 장으로 흐르면 해결이 안 된다.”



 오 전 시장은 퇴임 후 줄곧 해외에 체류 중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시작해 포퓰리즘의 대륙으로 불리는 남미(페루)를 거쳐 지금은 기아가 해결되지 않은 아프리카(르완다)에 머물고 있다. 그는 무엇을 찾아 나섰으며 무엇을 얻은 것일까.



 “영국도 우왕좌왕 식의 복지를 하는 걸 보고 놀랐다. 경제 위기 이후 철회하긴 했지만 한때 성인이 돼 분가하는 젊은이들에게 주택수당을 주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복지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데 우리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르완다에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키갈리시의 경제정책 자문관으로 경제정책을 짜는 데 자문을 하고 있다. 르완다는 인적자원과 지하자원이 모두 빈약하고, 항구가 없어 가공무역도 쉽지 않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관광산업을 연계해서 인천공항 같은 공항 허브를 만들어 동아프리카의 허브 국가, 최첨단 관광·서비스 국가로 승부를 걸겠다는 틈새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르완다 하면 제노사이드(종족 간 대학살)가 떠오른다.



 “1994년 종족 간 대학살로 인구 1000만의 나라에서 불과 4개월간 80만 명 이상이 죽고 20만 명 이상의 여성이 강간을 당하는 참상이 빚어졌다. 그러나 피해 종족(투치족) 출신인 폴 카가메 대통령이 화해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사회의 주요 지원대상국에 올랐다. 예산의 40%를 국제원조자금으로 충당한다. 전기도 들락날락하지만 ICT로 승부를 보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관광객도 많이 오고 국제원조기구도 들어오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장 경험이 도움이 되겠다.



 “어떻게 산업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자문 제안서를 키갈리시장에게 전달했다. 12월 초에 한국의 행정연구원 주관으로 이곳 장·차관과 대통령실 직원을 모아 자문 내용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여는데 그때 사흘 동안 하루 세 시간씩 강연도 한다.”



 -하루 일과는.



 “오전 8시쯤 시청으로 출근하는데, 공간이 좁아 별관 건축인허가 원스톱 센터에서 자리를 받아 일하고 있다. 퇴근하면 그날 느끼고 배운 걸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다. 이곳은 해발 1500~2000m에 위치해 있어 날씨가 선선한 대신 산소가 희박해 쉽게 숨이 차고 2~3개월 지나면서 대부분 만성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조깅 등을 하며 이겨 나가고 있다.”



 -외롭지 않나.



 “수십 명이 한 방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어 외롭지 않다. 같이 파견 나온 권영동 ICT 자문관, 최정봉 건축 자문관과 함께 월세 집을 얻어 같이 살고 있다. 두 분이 자취 경험이 없어서 내가 주방장 노릇을 하는데 김치찌개·된장찌개·미역국·북엇국·계란말이는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다. 물론 맛은 장담 못 하지만….”



 -귀국(내년 1월) 후 계획은.



 “현실정치에 참여할 마음은 없다. 다만 국민들이 국회의원으로, 서울시장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셨으니 어떤 형태로든 사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S BOX] 맨발로 다니는 르완다 아이들에게 신발 나눠줘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르완다. 르완다 어린이들 사이에선 ‘보다보다’라는 우간다산 슬리퍼가 큰 인기다. 평소엔 신발을 집에 보관하고 맨발로 다니다가 특별한 날에만 이 신발을 꺼내 신는 아이가 많다고 한다. 오세훈 전 시장은 일주일에 한 마을씩 다니면서 이런 아이들에게 신발 나눠주는 일을 한다.



 “신발 없이 다니다가 발을 다친 아이의 발에 엄마가 풀을 짓이겨 붙여 주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 신발 보급을 시작하게 됐다”는 오 전 시장은 “한 번에 갈 때 240켤레를 싣고 간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함께 나온 KOICA 자문단 2명(권영동·최정봉)과 한집에 살면서 생활비를 절약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신발을 구매해 전달하는데, 자동차 뒤 트렁크에 가득 채우면 240켤례까지 실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지지자들이 보내온 볼펜·노트 등 학용품과 옷가지들을 야간학교 같은 곳에 보내는 일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공짜는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KOICA 봉사단원이 있는 지역을 위주로 신발을 보급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공짜로 나눠주는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뭔가 시키고 그걸 잘 해냈을 때, 성과가 있을 때 인센티브로 신발을 주도록 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이 페루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하고 있는 KOICA 중장기 자문단은 각 분야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에 가서 해당 분야의 발전을 도와주는 일종의 지식(재능) 나눔 프로그램이다. 오 전 시장은 이를 “인생 이모작의 바람직한 형태의 자아실현”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각 방면에서 압축성장의 소중한 노하우를 체득하고 있는 인재가 많다.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이 청계산과 북한산 산행길에 생매장되고 있다. 가난과 기아·질병·무지 속에서 발전에 목마른 동남아·아프리카·중남미의 개도국들은 이분들의 경륜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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