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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전 뉴욕 특파원이 지켜본 반기문 리더십

중앙일보 2014.11.15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남정호 지음

김영사, 396쪽

1만6000원




처음에는 ‘동네북’이었다. 동양인 유엔사무총장에게 쏟아진 시선은 차가웠다. 취임식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날아온 첫 질문이 “언론에서 ‘기름장어’란 별명으로 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반기문 총장은 “그건 언론과 너무 친해서 생긴 거다”고 받아쳤다. 그러자 “유엔에서 왜 불어가 영어에 이어 두 번째 언어로 대접받아야 하는지 불어로 대답해 달라”는 캐나다 기자의 질문이 불어로 날아왔다. 반 총장은 통역을 거친 뒤에야 가까스로 영어로 답을 했다. 중세 이후 서구사회에서 불어는 귀족 언어이자 외교 언어로 통용돼 왔다. 동양인이 유엔을 이끈다는 사실에 대한 ‘반감과 발목 잡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반 총장이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대통령을 만나고 가택 연금 중이던 아웅 산 수 치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서구 언론들은 일제히 ‘십자포화’를 쏘았다. 유엔사무총장이 군부를 만나서 정권에 정당성만 부여한 꼴이 됐다는 지적이었다. 그들은 유엔사무총장에게 독재자를 맹렬히 비판하는 ‘도덕적 투사’의 리더십을 기대했다.



 반 총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언론에 실명을 거론하며 독재자라고 욕하는 것은 쉽다고 여겼다. 대신 독재자의 억지까지 들어주며 신뢰를 쌓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일. 그게 유엔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결국 반 총장은 끈질긴 대화와 설득 끝에 미얀마가 국제사회를 향해 문을 열게 했다. 나중에 서구 언론은 “반 총장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부하는 미얀마의 철권 통치자 탄 슈웨 장군을 설득한 것은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언론계에선 드물게 뉴욕과 런던, 브뤼셀 등 3개 지역의 특파원을 역임한 저자는 국제적 감각과 알뜰한 취재력으로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에 대한 깊은 스토리를 끌어낸다. 표면적으로 알던 ‘조용한 반기문’과 다르다. 그가 내거는 외교적 가치, 그걸 성취하기 위해 풀어내는 구체적 접근법이 ‘장수의 병법’을 연상케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민얼굴과 무대 뒤에서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치열한 외교전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당선 직후 반 총장은 느슨하고 방대한 국제기구인 유엔을 향해 ‘개혁’을 선언했다. 사무차장을 비롯한 유엔 핵심 간부들에게 일괄 사표를 요구했다. 반발이 컸지만 그대로 관철했다. 아울러 ‘나부터 먼저’로 변화를 주도했다. 반 총장은 아침 일찍 출근해 8시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유엔 직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고, 조직에서 빈 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부족장 가문 출신인 전임 코피 아난 총장은 출근을 여유롭게 하는 편이었다. 반 총장의 7년에 담긴 숨겨진 일화와 남 모르는 속사정, ‘동양적 리더십’을 저자는 구체적 사건들을 통해 조목조목 짚어간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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