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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블랙홀, 우주의 괴물일까

중앙일보 2014.11.15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 풍경1 : 블랙홀의 별명은 ‘우주의 괴물’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제시했습니다.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강해 빛은 물론 시간과 공간까지 후루룩 마셔버리는 블랙홀. 아인슈타인도 블랙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블랙홀은 시간과 공간까지 뒤엉켜버리는 곳이라 “자연의 법칙이 피해야 할 저주”라고 여겼답니다.



 # 풍경2 : 지구가 속한 은하계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가 안드로메다입니다. 그 중심에서 블랙홀이 확인됐을 때 과학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나중에는 지구가 속한 은하의 중심에도 블랙홀이 있다는 게 밝혀지자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괴물’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셈이니까요. 블랙홀은 정말 괴물일까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빨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뿜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빛마저 마셔버리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이 동시에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개봉한 우주영화 ‘인터스텔라’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블랙홀은 우주의 미스터리, 중력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등장합니다. 있음과 없음, 존재와 비존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현대 과학의 막다른 골목을 뚫고 나가는 키워드로 말입니다. 아직 인류는 블랙홀에 대해 잘 모릅니다.



 동양에선 옛날부터 거대 천체(天體)를 대우주, 사람을 소우주라고 불렀습니다. 둘의 속성이 통한다고 봤습니다. 그럼 우주에도 블랙홀이 있으니 사람에게도 블랙홀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게 ‘숨구멍’이라고 봅니다. ‘파~아!’ 하고 숨을 길게 내뱉어 보세요. 그리고 멈추세요. 10초, 20초, 30초…. 금방 숨이 막힙니다. 죽을 것만 같습니다. 살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후~웁!’ 하고 다시 숨을 들이마셔야 합니다.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그게 이어질 때 우리는 ‘살아있다’고 합니다.



 공기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블랙홀을 통과합니다. 가령 오후가 되자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툭 올라옵니다. 블랙홀에서 생각이 튀어나온 겁니다. 창조입니다. 라면을 하나 끓여 먹습니다. 배가 빵빵해집니다. ‘아이, 배고파’ 하던 생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블랙홀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린 겁니다. 파괴입니다. 그게 블랙홀의 날숨과 들숨입니다.



 인간의 감정도 하나씩의 별입니다. 블랙홀에서 나와 나름의 궤도를 돌고, 다시 블랙홀로 들어갑니다. 이 세상에 블랙홀로 돌아가지 않는 감정이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감정의 파괴를 거부합니다. “어떻게 이 아픔과 이 고통을 잊을 수 있어?” 블랙홀로 들어가는 별을 가로막고 붙듭니다. ‘나의 고집’이란 강력한 중력을 만들어서 블랙홀에 맞섭니다. 그래서 아픔과 슬픔의 별이 10년이든 20년이든 궤도를 그리며 내 안을 떠돌게 합니다. 결국 소우주는 슬픔의 우주가 되고 맙니다.



 알면 알수록 블랙홀은 ‘우주의 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홀이 있어서 우주의 숨통이 트입니다. 현대 과학은 아직 블랙홀의 기능을 잘 모릅니다. 그래도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그리 검기만 한 건 아니다(Black holes ain’t so black)”고 했습니다. 무작정 집어삼키는 암흑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파괴의 통로가 창조의 통로입니다. 들숨의 통로가 날숨의 통로입니다. 잘 창조하려면 잘 파괴해야 합니다. 파괴가 이미 창조의 한 과정입니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별이 생겨나고, 희로애락의 별이 사라지고. 그래야 우주가 숨을 쉬는 게 아닐까요. 블랙홀을 통해서.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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