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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린 채 말달리며, 날아가는 총알을 맞히는 격”

중앙일보 2014.11.14 01:06 종합 2면 지면보기
탐사로봇 파일리가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안착해 촬영한 혜성의 표면. 왼쪽 아래(빨간 원)에 파일리의 다리가 보인다. [로이터=뉴스1]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파일리의 착륙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모습(앞줄 왼쪽). [로이터=뉴스1]
확률만 보면 실패하는 게 정상일 수 있었다. 유럽우주국(ESA)의 맷 테일러 박사의 표현으론 “날아가는 총알을 맞히겠다며 눈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총알을 쏘는 격”이어서다. 혜성탐사선 로제타에서 분리된 탐사로봇 ‘파일리’가 목성 주변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67P)’에 착륙한 게 말이다. 과장이 아니 다. 테일러 박사가 오히려 줄여 말한 것일 수 있다. 그저 날아가는 게 아니라 시속이 6만㎞였다. 성공보단 실패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ESA는 해냈다.

시속 6만㎞로 움직이는 혜성에
탐사로봇 두차례 튕겨진 뒤 착륙
표면에 고정하는 작살 작동 안 해
땅 구멍 뚫어 성분 분석 어려워



 12일 오후 4시3분(세계표준시 기준) ESA의 파일리가 67P에 착륙했다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혜성 정보도 함께였다. 안드레아 아코마조 ESA 비행 책임자가 “파일리가 표면에 도달했다는 착륙 신호를 보내왔다”고 공식 확인했다. 10년여 준비 과정을 거쳐 2004년 3월 발사된 로제타가 지구와 태양 간 거리의 40배인 65억㎞를 날아가 10년8개월10일 만에 처음으로 파일리를 내려놓았고 파일리는 22.5㎞를 하강, 1㎢에 불과한 예상 착륙 지점에 내려앉았다는 얘기다. 중력이 지구의 10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해 작은 충격에도 파일리가 우주로 튕겨나갈 수 있었던 위험을 일단 넘긴 것이다.



 ESA의 의 장자크 도르댕 사무총장은 “인류가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선언했다. ESA의 과학자들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005년 7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탐사선 딥임팩트호의 충돌체를 혜성 템펠 1호에 충돌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혜성 표면에 탐사로봇을 착륙시켜 조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완벽한 성공’의 기쁨은 그러나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한 시간여 후 혜성 표면에 파일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작살이 발사돼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신호도 불안정했다. 서너 시간 후 ESA는 “파일리가 부드러운 모래 위에 착륙했거나 살짝 튀어 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파일리는 두 시간여 동안 한 차례가 아닌 세 차례 ‘착륙’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ESA가 13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처음 되튕겼을 때에는 1㎞나 멀어졌었다. 최종적으론 목적지로부터 다소 떨어진 경사면에 착륙했다. ESA는 또 13일 현재 파일리의 다리 3개 중 2개만 혜성 표면에 닿아 있는 상태라고 발표했다.



 파일리는 13일 혜성 표면을 찍은 영상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혜성 표면을 보게 된 것이다. 울퉁불퉁한 암석에 거대한 절벽까지 있었다.



 ESA는 이에 “파일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또 다른 성취”라고 평가했다. 앞서 로제타호는 2008년 9월 스타인스 소행성과 2010년 7월 루테시아 소행성을 근접 촬영했었다. 이후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자 2011년 6월 동면에 들어가 비행하다가 지난 1월 자체 알람에 맞춰 2년 반 넘는 동면을 끝내고 작동을 재개하는 기술적 쾌거도 이뤄냈다.



 유럽은 혜성 탐사 소식에 크게 고무됐다. 그간 우주 관련 주요 뉴스는 미국과 러시아가 사실상 독점해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첫 우주인, 미국의 달 착륙이 대표적이다. 유럽인들은 우주과학에서도 유럽의 자존심을 회복했다고 보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에 있는 과학박물관을 찾아 “유럽의 승리”라며 “유럽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로제타 프로젝트가 답이 될 것”이라고 환호하기도 했다. 13억 유로(1조7800억원)를 들인 값을 한 셈이다. 영국 우체국인 로열메일은 ‘첫 혜성 착륙을 축하하며’란 내용으로 소인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거리는 남았다. 당초 파일리는 30㎝ 깊이로 구멍을 내고 혜성의 얼음과 유기물 등 구성 성분을 분석하는 실험을 할 예정이었다. 혜성이 태양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의 최영준 박사는 “혜성은 긴 타원궤도로 짧은 시간 동안만 태양에 가까이 접근하고 대부분 멀리 차가운 곳에 있기 때문에 태양계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 형태가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살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어서 조그만 충격에도 우주로 튕겨나갈 수 있는 상태다. 로봇 착륙 책임자인 슈테판 울라메크 박사는 “당분간 실험을 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혜성의 물이 지구의 물과 같은지, 유기물 덕분에 지구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등 혜성에 관한 오랜 의문이 한동안 의문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로제타와 파일리가 혜성이 태양에 근접할수록 꼬리가 생기는 ‘장엄한 우주 현상’을 중계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바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하선영 기자



 

◆로제타·파일리=고대 이집트의 비석(碑石) ‘로제타석’과 이집트 나일강에 있는 파일리섬에서 이름을 따왔다. 1822년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로제타석과 파일리섬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의 명문(銘文)을 비교해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해낸 걸 염두에 둔 이름이다. 그 덕분에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이해하게 됐듯 이번 탐사로 태양계와 생명체 탄생의 비밀이 풀리길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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