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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일 관계, 민간 교류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2014.11.14 00:05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박근혜 외교가 한·일 정상회담이란 덫에 걸렸다. 불편한 양국 관계가 정상회담 한 방에 좋아질 걸로 보는 이가 적잖은 모양이다. 계속 외면하자니 “중·일 정상회담까지 이뤄진 마당에 동북아의 왕따 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덜컥 회담에 나가기도 그렇다. 회담 조건으로 “과거사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공언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박 대통령에겐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가 따라다닌다. 노나라 미생이 다리 밑에서 연인을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폭우로 강물이 부는데도 떠나지 않아 익사했다는 일화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낸 세종시 수정안에 그가 반발하자 정몽준 당 대표가 타박하며 인용한 고사다. 그러자 그는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됐고 애인은 평생 괴롭게 살았을 것”이라며 되받아쳤다. 그런 박 대통령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나설 순 없는 일이다. 조속한 정상회담을 촉구하던 전문가들도 이젠 “아베가 레드라인을 넘어 물 건너갔다”고 한숨이다.



 이런 꽉 막힌 상황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대안이 있다는 거다. 한·일 관계가 나쁜 건 이번만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비슷했다. 발단은 독도였다. 2005년 2월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반일 감정에 불이 붙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파열음을 내며 정면충돌한다. 역대 최고의 개성파 지도자로 꼽히는 두 사람이다. 오가는 말은 거칠었고 행동은 고집스러웠다.



 여기에다 고이즈미의 집요한 야스쿠니 참배는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옛 총리들이 말렸지만 “다시 전쟁을 안 일으킨다는 마음으로 간다”며 5년 반의 재임 내내 야스쿠니를 찾았다. 가만 있을 노 대통령이 아니었다.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며 거칠게 대응했다. 1974년 문세광 저격 사건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였다.



 그해 6월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화기애애할 리 없었다. 2시간 중 1시간50분이 역사 공방이었다. 한국 언론에선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경론과 함께 “국익을 위해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실리론도 무성했다. 영락없이 지금의 판박이다.



 이런 와중에 놓치면 안 될 대목이 있다. 두 정상의 격돌에도 불구, 민간 관계는 빠르게 발전했다는 거다.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된 건 그해 3월이었다. 일본 내 한류는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켰다. 경제 관계도 좋아졌다. 2003년 535억 달러였던 한·일 간 무역 규모는 2007년엔 54% 늘어난 826억 달러로 급증했다. 정상 외교가 틀어져도 민간 교류는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자고로 외교를 하다 보면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때의 최선책은 양쪽을 적절히 챙기는 거다. 대통령은 단호하게 대처하되 밑에선 일본과 상호이익을 추구하자는 얘기다.



 그러니 정상회담에만 목맬 일이 아니다. 차라리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같은 혐한 기류를 어떻게 누그러뜨릴지 고민하는 게 옳다. 요즘 국회에서 열리는 혐한 서적 전시회를 보면 기가 막히다. 『한국인이 말하는 치한론(恥韓論)』 『범한론(犯韓論)』 같은 책들이 일본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헤이트 스피치가 한국인만을 겨냥한다는 건 유념할 대목이다. 현재 일본 내 한인 동포는 50만여 명. 중국인은 68만여 명이다. 또 지난해 말 일본 정부 조사에서 중국인에 대해 “친밀감을 못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80.7%나 돼 중국인 비호감도가 한국인(58%)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그렇다면 한국인보다 중국인을 향한 욕설이 난무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도 극우파들은 한인타운인 도쿄 신오쿠보에 몰려와 “한국인을 죽이자”고 외치고 다닌다. 차이나타운에는 얼씬도 안 한다. “중국인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파행은 그냥 둘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베 정권이 마땅치 않다고 한·일 간 화해 노력을 포기해서도 곤란하다. 이런 탁류 속에서도 희망의 싹이 자주 눈에 띄는 까닭이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한글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의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그런 자리였다. 미술가였던 노마 교수는 돌연 한글의 아름다움에 취해 삶을 바꾼다. 이후 평생을 한글 연구에 매진하며 『한글의 탄생』 같은 역작을 발표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한국 지성인들의 글을 엮은 『한국·조선의 지를 읽다』란 일본어판 책을 내며 한국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출판기념회엔 전·현직 국립국어원 원장을 비롯, 내로라하는 국어학자들이 참석해 그의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이뿐 아니다. 약탈됐을 걸로 여겨지는 16세기 조선 불화가 지난해 6월 일본에서 돌아올 수 있던 것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일본 승려들 덕택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과거를 참회하면서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도 숱하다.



 일본인 모두를 싸잡아 적대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런 양심세력들과 손잡고 혐한 무드를 잠재우는 게 정상회담을 도모하는 것보다 긴요한 시점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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