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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호주 FTA 비준 늦어지면 일본에 시장 빼앗긴다

중앙일보 2014.11.14 00:05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봉현
주호주 대사
잠시 시계를 앞으로 돌려 2015년 5월 호주로 가보자. 수도 캔버라에 사는 샘은 곧 새 자동차를 구입할 생각이다. 그는 한국산과 일본산 자동차를 놓고 고민 중이다. 성능과 디자인은 모두 마음에 든다. 결국 자동차값을 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인 자동차 가격 경쟁력이 바로 지금 한국 국회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호주 소비자들의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과 호주는 올 4월 토니 애벗 호주 총리가 방한했을 때 FTA에 서명했다. FTA는 양국에서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호주는 지난달 1일 FTA 비준 이행법안을 처리했다. 한국 정부는 9월 16일 국회로 비준 동의안을 송부했고, 현재 국회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양국 정부가 조기 비준을 촉구하는 것은 바로 경쟁국들 때문이다. 일본과 호주의 FTA 비준은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늦은 7월 일·호주 FTA에 서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지난 6일 참의원 상임위 승인을 마칠 정도로 처리 속도가 빠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관세 인하 날짜다. 한·호주 FTA의 경우 매년 1월 1일 관세가 인하되고, 일·호주 FTA는 매년 4월 1일 관세가 인하된다. 일단 FTA가 발효하면 즉시 관세가 인하되고, 정해진 날짜에 관세가 추가 인하된다. 한·호주 FTA가 올 12월 31일까지만 발효되면 내년 1월 1일 곧바로 2차로 관세가 인하된다. 반대로 발효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2차 관세 인하 시점도 2016년 1월 1일까지 밀리게 된다. 일본의 경우엔 일·호주 FTA가 내년 3월 30일까지만 발효되면 4월부터 2차로 관세가 인하된다. 일본 의회가 비준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은 호주로 자동차 등 공산품을 수출하고, 자원·농축산물을 수입하는 비슷한 교역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먼저 FTA를 발효시키는 쪽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게 된다. 한국 산업연구원(KIET)은 7일 한·호주 FTA가 일·호주 FTA보다 늦게 발효되면 연평균 4억56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먼저 관세 인하 효과를 선점하는 국가는 상대방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과 FTA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게 된다. 한국에서 여야가 13일 한·호주 FTA의 조속한 비준을 위해 일단 본회의에 넘기기로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치열한 무역전쟁에서 각국은 FTA를 통해 자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공급 체인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다. 호주는 한국·일본에 이어 중국과도 FTA 체결에 근접해 있다. 한국은 호주에 이어 최근 캐나다와 FTA를 체결했고, 뉴질랜드와도 협상 마무리 단계다.



 흥미롭게도 양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모두 상대방 국가들에 ‘무역 경쟁국’들이다. 한국은 호주 공산품 시장에서 일본·중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호주 역시 한국 시장에서 미국·유럽연합(EU)·뉴질랜드 등과 농축산물과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또 2017년부터 호주 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된다. 한국·일본·EU는 연 100만 대 규모의 호주 자동차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제품 등 여타 제조업 시장에서도 한·중·일 3국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호주 역시 한국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및 유럽·칠레산 와인과 경쟁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EU·칠레 FTA로 인해 호주는 현재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양국 소비자들 역시 보다 저렴한 가격과 고품질의 자동차·전자제품·쇠고기·와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인 만큼 FTA가 빨리 비준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과 호주의 무역은 세계에서 가장 상호보완적인 관계 중 하나다. 양국 간 포도 교역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5월 호주에서 처음으로 식용 포도가 수입됐고, 4개월 뒤 한국은 경기도 화성에서 재배한 식용 포도를 호주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서로 계절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이런 상호보완적인 수출이 가능하다.



 이런 보완적 무역은 농산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산업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에너지를 호주로부터 수입하고 있고, 호주는 한국으로부터 자동차·전자제품 등 완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양국 교역이 네 배 가까이 성장했다는 점에서 양국 간 FTA가 진작 체결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FTA 발효 시 금융, 법률, 서비스, 사회간접자본 개발 등 새로운 분야로의 협력 확대도 가능해진다. 인프라 개발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업이 호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약 1250억 달러 규모의 국가 기간산업 인프라 구축사업에 참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호주 FTA의 조속한 비준을 간절히 희망한다.



김봉현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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