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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55> 부산 갈맷길 7-2코스(금정산성길)

중앙일보 2014.11.14 00:05 Week& 4면 지면보기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鎭山)이다. 산 자락 안에 천 년 사찰 범어사가 있고, 수백 년 전통의 막걸리 마을이 있다. 능선에 올라 굽어보면 부산시내가 품에 안기는 듯하다.



산마루 바위샘 ‘금빛 물고기’ 지키려, 국내 최대 산성 쌓았나요?

성(城)은 방어적 개념의 군사시설이다. 성 중에서 산성은 적극적 방어의 건축물이다. 집 주위에 돌을 쌓아 담을 올리는 일도 성가신데, 산 위에까지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을 터이다. 산 너머에 사는 적이 어떤 일이 있어도 산을 넘어오면 안 되는 사연이 있었을 터이다. 산 너머의 적이 산을 넘으면 안 되는 것처럼 산 안쪽 세상도 산 너머 세상을 도모할 수 없었다. 산성은 세상을 가르는 강고한 경계다. 하여 산성을 따라 걷는 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숱한 사연을 되새기는 일일 수밖에 없다.



부산에 내려가 금정산성을 따라 걸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트레일 ‘갈맷길’의 한 구간이 금정산 능선에 늘어선 금정산성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마침 금정산 자락에 단풍이 내려앉은 맑은 가을 날이었다.



금정산 그리고 산성



서울에 북한산(837m)이 있다면 부산엔 금정산(801.5m)이 있다. 아니 부산시민에게 금정산은, 서울시민의 북한산보다 훨씬 각별하다. 산자락에 밴 인적만 보자면 금정산은, 서울 외곽의 북한산보다 서울 복판의 인왕산(338m)과 더 가깝다.



취재에 동행한 허탁(64) 금정산지킴이단장의 말마따나, 금정산은 부산을 등에 업고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형세를 띤다. 능선에 올라 동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광안대교가 보이고 서남쪽으로는 크게 휘는 낙동강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금정산 북문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면 범어사를 지나며, 동문과 북문 사이 비탈에 산성마을이 숨어있다. 남문 아래 산자락이 부산의 옛 고을 동래를 품고 있는데다, 능선에 올라서면 낙동강과 동남해 바다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금정산 마루금을 따라 금정산성이 이어진다. 둘레 1만8845m, 지정면적 71만5468㎡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성이다. 금정산 등산로 대부분이 산성과 병렬하거나 교차한다. 갈맷길은 7코스가 금정산성을 지난다. 7-1코스가 남문에서 동문까지 2㎞ 구간이 걸쳐 있고, 7-2코스가 동문에서 북문까지 3.8㎞ 구간이 포개져 있다. 하여 갈맷길 7코스 금정산성 구간을 걸었다는 건, 금정산 주능선에 올라타는 산행을 했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기록에 따르면 금정산성은 조선 숙종 3년(1703년)에 쌓았다. 그러나 1667년 산성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 훨씬 전에 산성이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금정산 능선에 산성을 쌓은 건 물론 왜구 때문이었다.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1592∼98)의 뼈아픈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은 상쾌하다. 능선에 올라 걷는 것이어서 양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한쪽에선 강바람이, 다른 한쪽에선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금정산에 오른 날, 강 쪽 기슭엔 억새가, 바다 쪽 기슭엔 단풍이 한창이었다. 금정산성에서 가장 전망이 빼어나다는 4망루에서 땀을 식혔다. 멀리 금정산 정상 고당봉 오르는 사람과 동문을 지나 구릉을 오르는 사람이 함께 보였다. 산성을 걷다 많은 부산사람과 마주쳤다. 북한산보다 연령이 낮았고, 북한산보다 활기찼다. 부산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1 범어사 돌바다. 넓은 바위 아래로 계곡물이 흐른다. 2 금정산성 막걸리 양조장 모습. 3 범어사 일주문. 일주문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이 4개다.


금정산 그리고 산사



금정산을 두고 심산유곡(深山幽谷)이라고 쓰는 건 무리다. 언덕이 가파르지도 않고 비탈이 까다롭지도 않다. 그렇다고 동네 야산이라고 하면 큰 실례다. 범어사에 얽힌 전설 한 자락만 알고 있어도 금정산은 무시할 수 없다. 천 년 사찰은 아무 산자락에나 들어앉지 않는다.



금정산 정상 고당봉 옆 산마루에 바위샘이 있다. 가뭄에도 물이 차 있다. 전설에 따르면 금빛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샘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금정(金井)이라는 산 이름이 나왔고, 범어사(梵魚寺)라는 절집 이름도 나왔다. 불교용어로 범천(梵天)은 하늘을 가리키므로, 범어사는 ‘하늘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물고기는 용맹정진하는 수행자가 닮고 싶어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범어사처럼 물고기 어(魚) 자가 들어간 절집이 많다.



북문에서 계곡을 따라 1.6㎞ 내려가면 범어사다. 범어천이라 불리는 이 계곡이 예사롭지 않다. 엄청나게 큰 바위가 계곡을 따라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른바 ‘범어사 돌바다’로 불리는 지역으로, 돌바다 아래로 물이 흐른다. 이 물에 버들치·꺽지 등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가 산다. 계곡을 따라 암자 세 개가 자리하는데 대성암 자락의 물소리가 유난히 그윽하다고 한다. 하여 ‘금정 8경’의 하나가 대성은수(大聖隱水)다.



범어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대사도 머물렀으며,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가 여기에서 승병을 모았다. 하나 많은 불자에겐 기행을 일삼았다는 동산스님의 사찰로 기억된다. 동산스님은 일제 강점기 범어사의 조실스님으로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이다.



범어사에 오면 꼭 둘러볼 곳이 있다. 사실,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다. 일주문이어서다. 보물 1461호로 지정된 범어사 일주문 ‘조계문’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모양의 일주문이다. 보통 일주문은 기둥 2개 사이로 출입구가 하나 나 있는데, 조계문은 돌기둥 4개가 일렬로 서 있어 출입구가 3개나 된다. 어떤 뜻이 서려있는지 알 길 없었으나, 여느 사찰의 일주문보다 낮고 암반 위에 뭉툭한 돌기둥을 세운 꼴이 자연스러웠다.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 않는 부산 사람을 떠올렸다.



금정산 그리고 막걸리



이제 금정산 자락의 사람을 말할 차례다. 금정산 산행과 금정산성길 걷기여행에 차이가 있다면, 아마도 금정산 자락에 얹혀 사는 사람에서 갈라질 것이다. 사람이 사는 꼴을 들여다보는 여행이 걷기여행이다.



금정산성 안쪽에 산성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으로 금정구 금성동을 이른다. 금정산 자락 능선에 둘러싸인 데다 해발 400m에 들어서 있어, 부산의 평지마을보다 평균기온이 2∼3도 낮고 계절도 보름 정도 늦다. 산성마을이 바로 그 유명한 금정산성 막걸리의 마을이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이른바 대통령의 막걸리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1970년대 초반, 산성 동문 밖에서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1979년 부산에 들른 박정희 대통령은 부산시장에게 그 막걸리 맛을 얘기했다. 그러나 당시 금정산성 막걸리는 밀주였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고서 식량난을 해소하겠다며 막걸리에 쌀의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 이후 금정산성 막걸리는 다시 양지로 나왔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80년 7월 대한민국 민속주 1호로 지정됐다.



하나 금정산성 막걸리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18세기 초 금정산성을 쌓을 때 인부들에게 막걸리를 빚어 먹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일제가 주세법을 시행해 막걸리의 제조와 판매를 제한했던 시절에는 마을 전체가 범죄 소굴로 전락했다. 쌀 농사가 힘들어 대대로 누룩을 빚어 팔던 산성 사람들은 일제 세무서와 경찰의 단속과 맞서 싸웠다. 그렇게 힘겹게 산성 사람들은 막걸리를 지켰다. 지금 금정산성 막걸리의 대표는 유청길(56)씨다. 모친 전남선(86)씨에 이어 누룩을 빚고 막걸리를 낸다.



“하루에 1만 병 꼴로 팔립니다. 한 사람이 1병씩 마신다고 하면 하루에 1만 명이 우리 막걸리를 마신다는 얘기지요.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정부 정책은 규제 일변도입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전통 누룩으로 빚는 거의 유일한 막걸리다. 시중의 다른 막걸리는 시간이 지나면 상하지만, 금정산성 막걸리는 유산균이 된다. 시큼하고 털털한 맛이 강해, 처음엔 거부감도 든다. 그러나 마실수록 진한 맛이 배어 나온다. 처음엔 퉁명스러워보여도 속으로는 정이 깊은 부산사람 같은 맛이다.





●길정보=걷기여행길 포털 ‘이달의 추천 길’ 선정위원회는 갈맷길 7-2코스를 11월의 추천 길로 선정했다. 7-2코스는 금정산성 동문에서 시작해 금정산 능선을 따라 북문까지 걸은 뒤 범어사로 내려와 노포동 고속버스터미널과 스포원파크를 지나 상현마을까지 이어지는 13㎞ 길이다. 그러나 week&이 걸어본 결과, 금정산 능선을 따라 걷는 구간과 달리 범어사 입구에서 상현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추천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구간이 자동차가 쌩쌩 지나는 찻길이었다. 갈맷길이 부산시 곳곳을 잇는 대형 트레일이어서 다음 코스와 연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길을 낸 것으로 판단됐다.



 하여 week&은 코스를 조금 수정했다. 산성마을 금성동 주민센터에서 약 1㎞를 걸어 산성 동문까지 간 뒤 능선을 따라 북문까지 3.8㎞를 걷고 북문에서 계곡길을 따라 범어사 입구까지 1.9㎞를 내려왔다.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것도 추천한다. 모두 6.7㎞ 산길로 걷는 데만 3시간 정도 걸린다.





 금정산성 막걸리(sanmak.kr)는 택배로도 받아볼 수 있다. 750㎖ 10병(종이박스) 1만9000원. 051-517-0202. 산성마을 안 산성청송가든(www.sansungchon.co.kr)에서 산성마을이 자랑하는 별미 흑염소불고기(300g 1인분 3만5000원)와 오리백숙(1마리 4만5000원)을 먹었다. 051-517-5502. 부산시 자치행정과 051-888-3541. 부산관광공사 051-780-2111.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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