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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안 되는 것도 시 …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시

중앙일보 2014.11.14 00:04 종합 25면 지면보기
세상의 왁짜한 이해관계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족속이 시인들일 게다. 천성이 여리거나 예민한 그들은 사소한 기쁨에 감사하고 타인의 아픔, 사회의 그늘에 고개를 떨군다. 시인은 그래서 자본주의의 반짝거리는 상징물인 돈을 피해갈 수 없다. 개인의 불행이든, 공동체 차원의 문제든 상당수 괴로움의 시작에는 돈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끝별 시선 『돈詩(시)』

 그런 돈을 소재로 한 시를 모은 시선집이 나왔다. 정끝별(50) 시인이 시를 고르고 해설을 붙인 말 그대로 『돈詩(시)』(마음의숲)다.



 정씨는 2007년 밥을 소재로 한 시선집 『밥』을 낸 적이 있다. 이번에는 “드물게 돈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고, 드물게 돈으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라며 돈을 소재로 한 시에 주목했다. 경제적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한 발 더 나가 ‘호모 머니쿠스’가 판치는 세상에 돈시들을 통해 ‘돈의 바깥’을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시선집에 실린 66편의 돈시들은 시대와 시적 경향을 가로지른다. 김수영·김상옥 등 옛 시인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김민정·최금진 등 요즘 시인도 있고, 직접 돈에 대해 말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도 있다. 어느 쪽이든 펼쳐 감상하면 될 듯싶다.



 이성복의 ‘그날 우리는 우록에서 놀았다’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쉽지만 강렬한 시다. 테니스모임 회원인 시의 화자,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하필이면 ‘우록(友鹿)’이라는 이름의 마을로 테니스회 야유회를 갔다. ‘빠듯한 외통수’ 길을 따라간 일행, 손 씻으러 간 수돗가에서 ‘성기 속살처럼 거무튀튀’한 염소 수육을 목격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염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으며 해질 때까지 논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고성방가 코스. 화자 역시 ‘노소동락 뚱뚱한 배와 흐벅진 엉덩이’ 사이에서 춤을 춘 모양이다. ‘나도 얼마나 흔들어 댔는지 예술가는 과연 다르다고/칭찬까지 받았다 염소의 피 냄새가 입안에 그득했다’라는 문장으로 시를 끝맺는다. 사슴을 벗 삼는다는 마을 이름이 무색해진 딱한 세태의 한 장면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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