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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수능, 끝이 아니라 시작이길 바랍니다

중앙일보 2014.11.14 00:03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한파를 뚫고 어제 수험생 60만 명이 수능을 치렀습니다. 고교생 외에 재수·반수(半修)생도 14만5000명에 달합니다. 가채점을 해본 수험생들 사이엔 희비가 엇갈렸을 겁니다. 쉬웠던 영어는 한 문제 실수로도 등급이 내려갈 수 있어 골치고, 국어는 상대적으로 변별력이 높아져 신경이 곤두섭니다. 고교 시절 내내 수능일을 목표로 달려왔을 테니 잘 본 학생들은 고생한 보람을 맛봤을 겁니다. 반대로 실수한 학생들은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린 절망에 휩싸였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의 영향이 큰 것은 대학 간판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기성세대가 경험한 사회에선 학벌(學閥)이 취업과 출세의 잣대로 작용한 게 사실입니다. 회사에서 ‘만년 과장’이어도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가면 그를 보는 시선이 바뀐다는 얘기가 요즘도 회자됩니다. 자녀가 다니는 대학의 이름값이 부모의 체면이라고 여기는 풍토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걸 수험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비리그에 속한 미국 코넬대에서 십수 년 전 박사 학위를 받은 사립대 교수의 얘기입니다. “최상류층에서 하버드·예일 등 학부 출신끼리 네트워크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론 간판만으로 능력을 평가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아이비리그 졸업장이 당장 위력을 발휘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요즘은 국내에서 학벌의 효과가 급격히 줄고 있고 대기업의 인사는 이미 변했다”며 “구성원이 변화를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타임래그(time lag) 상황”이라고 진단합니다.



 올해 취업률을 보면 전공별 격차가 극심합니다. 평균 취업률 60% 이상인 전공 37개 중 90%가 의료·보건·공학계열이고, 서울 상위권대 인문계열보다 지방대 공학계열 취업률이 단연 앞섭니다. 본지가 10대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신입사원 채용 때 고려사항을 물었더니 “직무 관련 역량을 중시하는 쪽으로 진작 바뀌었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삼성그룹은 최근 발표한 채용제도 개편안에서 “연구개발·기술·소프트웨어 직군은 전공 능력 위주로 선발하고 영업·경영지원 직군은 하고 싶은 직무에 관심을 갖고 성실히 준비한 지원자를 뽑을 것”이라며 “출신 대학 등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반영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기류는 ‘묻지마 대입 지원’이 가져올 피해를 예고합니다. 원서를 쓸 때부터 관심 있는 전공이 무엇이고 향후 어떤 직업으로 진출하고 싶은지를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집이 인천인데 취업률이 높은 지방대 공대에 진학한 한 학생은 “선생님 추천대로 학과와 관계없이 ‘인 서울’ 대학에 간 친구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를 부러워하더라”고 말합니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수능 실수는 만회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에선 1등이 있지만 아무도 꼴등을 비웃지 않는다. 10대의 마지막 관문을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도전자였어’. 인터넷에 오른 응원글처럼 수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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