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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부산갈매기, 빅브러더 사건

중앙일보 2014.11.14 00:03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1984』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조지 오웰의 고전이다. ‘빅브러더’는 환난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민을 감시한다. 수단은 곳곳에 설치된 ‘지능형 텔레스크린’이다. 모니터가 행동과 음성을 일일이 잡아낸다. 우리는 감시사회, 감시자의 의미로 ‘1984’ ‘빅브러더’라는 말을 써 왔지만 사실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은 아니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텔레스크린이 쫙 깔린 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소설 속 텔레스크린 같은 ‘텔레CCTV’가 우리를 지켜보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CCTV 보급 대수는 500만 대로 추정된다. 국민 10명당 한 대다. 동작·음성 인식과 고화질 360도 촬영이 가능해졌다. 특히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지구촌 끝에서도 우리를 지켜볼 수 있는 ‘텔레스크린’으로 변신했다. 얼마 전 외국 해커가 전 세계 CCTV 7만 대를 해킹했다. 이 중 6000대가 한국의 가정집·헬스클럽 등에 설치된 것이었다. 이쯤 되면 텔레스크린 시대에 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텔레스크린이 확산된다고 곧바로 ‘1984’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빅브러더가 있어야 한다. CCTV는 범죄를 예방하고 치매 환자 같은 약자를 돌보는 선한 얼굴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권력과 돈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텔레스크린을 악용한다면, 사회적 갑을 관계가 개입한다면 CCTV는 두려운 감시도구로 돌변한다. 그런 면에서 감시사회 ‘1984’의 형성조건은 세 가지다.



 ①지능형 텔레스크린 ②촘촘한 정보수집망 ③사회적 갑을 관계



 국가인권위원회가 ‘부산갈매기, 빅브러더 사건’을 조사 중이다. 프로야구 롯데구단 대표는 원정경기 때 선수들이 묵는 8개 호텔에서 CCTV 정보를 제공받아 오다 들통이 났다. 구단 측은 숙박 조건으로 정보 제공을 내걸었다고 한다. 호텔은 귀한 단체손님을 받기 위해 요구에 응했다. 외출·귀가 기록 등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선수 사생활이 유출됐다. 구단 측은 선수 보호 차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연봉 협상에 활용하기 위해” “경기 운영에 간여하기 위해” 감시했다는 선수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한 야구 칼럼니스트가 포털에 글을 올리고 심상정 국회의원이 관련 기록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롯데구단 대표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롯데구단과 호텔 8곳이 선수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영상 정보를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으로 끝날 일로 보이지 않는다. 롯데구단의 정보수집은 구단과 숙박업소, 구단과 선수라는 권력 불평등의 토대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텔레스크린이 돼 버린, 똑똑한 CCTV가 깔린 사회에서 갑을 관계가 개입하면서 ‘작은 1984’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몇 가지를 짚어봐야 한다. 첫째, CCTV의 스마트 속도를 보안 기술·법제가 따라가고 있느냐다. 지금도 영상 정보가 여과 없이 유통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암호화 규정은 있지만 구속력이 없다. 대부분의 CCTV에는 해킹·유출을 막을 기본적인 보안칩도 없다. 둘째, 영상 정보를 넘겨받았을 때 이를 처벌할 명백한 근거가 있느냐다. 화장실·침실 촬영분은 명백하지만 로비·현관·작업장 촬영분의 유출에는 법적 논란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텔레스크린 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고 있느냐다. 일반 CCTV 말고도 얼마든지 몰래카메라로 돌변할 수 있는 블랙박스의 보급 대수가 200만 대에 이른다.



 ‘1984 삼각형’은 말한다. 우리가 안전과 편리의 도구를 바란다면 똑똑한 CCTV는 그렇게 될 수 있다. 다만 적절한 수를 유지하고 그만 한 보안능력을 갖추었을 때다. 돈과 권력이 반칙하지 못하도록 견제했을 때다. 그렇지 않으면 신종 위험사회에 개개인은 갇히고 만다. ‘부산갈매기, 빅브러더 사건’은 감시사회의 어두운 미래상을 언뜻 보여주었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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